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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케아회의와 유월절
교회사 및 세계사에 하나의 큰 획을 그은 니케아 회의(325년)는 당시로써는 처음 있는 세계적 회의였다. 유월절을 없애고 부활절을 지키자고 하는 것이 주요 의제 중 하나였다.

성경에서 말하는 부활절(Resurrection Day)은 무교절 후 첫 안식일 다음날(일요일)이며,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에 최후의 만찬을 행하시고 다음날인 무교절에 십자가에서 운명하셨으며 안식 후 첫날 부활하셨다. 레위기 23장에 유월절과 무교절에 대한 설명이 있고, 이어서 초실절(신약의 부활절)에 대한 설명이 기록되어 있는데 초실절(初實節)은 무교절 지나고 안식일 다음날(일요일)에 첫 이삭(열매) 한 단을 베어다가 제사장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던 절기이다.

하나님께 이 초실절 제물을 드리기까지는 햇곡식을 먹지 못하였고, 초실절 제물을 드린 후에야 햇곡식을 먹을 수 있었다. 구약의 모든 절기가 신약 시대에 이르러 예수님의 행적으로 성취된바,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성만찬을 하신 후 다음날인 무교절(1월 15일)에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시고 영혼이 떠나셨다.

그리고 안식일 다음날(일요일) 부활하셨으니 이는 구약의 초실절을 이루신 것이다(마 28:1, 막 16:1 눅 24:1, 요 20:1).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가장 먼저 부활하시사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으니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예수님 이전에 죽었던 성도들이 따라서 부활 받게 된 것이다(마 27:50, 고전 15:20 참조). 그러므로 신약의 부활절은 구약 초실절의 실상이었고 그 날짜는 유월절과 무교절 후에 오는 첫 안식일 다음날(일요일)이었다.

초대 교회는 그리스도의 유언에 따라 1월 14일 저녁에 유월절을 지키고, 다음날인 15일에는 무교절을 지켜 금식하고, 또 무교절 후 안식 후 첫날에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절을 지켰다(행 20:6∼7절 참조).

그런데 일찍부터 로마교회는 유월절 다음에 오는 일요일에 성찬식 행하기를 주장하였다.

이러다 보니 동·서방 교회 사이에 틈이 생기기 시작하였고, 유월절을 지키는 교회에서 유월절과 금식하는 무교절까지 지키고 난 후 로마 지역으로 여행을 갔을 때, 인제야 금식하며 성찬식하는 장면을 보며 매우 놀라워하게 되었다. 로마교회에서는 2세기 중엽부터 유월절을 지키지 않고 부활절을 지키는 관습이 시작되었다.

155년경 서머나의 감독 폴리갑이 로마교회 감독 아니케터스와 유월절에 대한 문제로 토론하였다. 폴리갑은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인 요한, 그리고 여러 사도와 함께 매년 유월절을 지켜왔노라고 하면서 유월절이 예수님 때로부터 내려온 전승임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이 모임에서 양편은 서로 설득할 수 없었다. 이 폴리갑은 사도시대 때부터 신앙을 가졌던 사람으로 장수하였다. 이때는 이미 고령이었고 얼마 후 순교당하였다.

197년경에는 로마교회 감독 빅터가 유월절을 지키지 말고 부활절을 지키자고 주장하는 "도미닉의 규칙"(Dominical Rule:주의 규칙)을 따르도록 여러 교회에 압력을 가했다. 서방 교회들은 빅터가 주장하는 도미닉의 규칙을 따르기로 하였지만, 일찍이 그리스도 교회의 초기 기반이었던 아시아의 교회들은 크게 반발하였다.

에베소의 감독 폴리크라테스는 빅터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은 가문에서 여덟 번째 감독직을 수행하는 사람이며, 사도 요한과 사도 빌립 등 여러 사도로부터 받은 권한을 행사하고 있고, 적어도 어느 것이 바른 규칙인지를 알고 있다며 유월절을 지켜야 함을 강한 논조로 설명하였다.

사단은 이처럼 생명의 법인 유월절을 파괴하기 위해 끊임없는 공격을 퍼부었다. 그 불법자는 결국 로마 황제의 힘을 이용하여 생명의 진리를 없애버렸으니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주재한 니케아 회의를 통해서였다. 주후 325년 5∼6월 니케아 지방에서 열린 이 종교회의는 콘스탄틴 황제가 의장이었다. 이 회의에서 유월절을 폐지하고 부활절을 지키기로 하였으며 부활절 날짜는 그들이 예전부터 주장해 오던 대로 춘분 후 만월 다음의 첫 일요일로 정했다.

유월절과 무교절을 폐지해 버렸기 때문에 성경에 정해진 부활절을 지킬 수 없었던 것이다.
이 니케아 회의에서는 당시, 예수님은 신이 아니라 피조물이라고 주장하던 아리우스를 추방하는 문제, 그리고 교회의 조직을 정비하는 내용 등을 안건으로 상정하여 처리하고 폐회하였다.

이리하여 2세기 중엽부터 시작되었던 유월절 논쟁은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라" 고 다니엘서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을 성취시키고서, 4세기에 와서야 일단락되었다.

니케아 회의는 여러 가지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콘스탄틴 황제의 개입 때문에 로마교회는 권한이 강화되었고 황제는 교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어 서로 추구하던 바를 이룬 것이다. 이제 로마 황제의 권세를 등에 업은 로마교회의 독주를 막을 자가 이 땅에는 없었다. 모든 교회는 로마교회의 권력에 복종하지 않으면 이단이 되어 박해를 당해야 했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성도들은 사막으로, 산중으로, 동굴 속에 숨어서 유월절을 지켜야 했다.

교회사 초대편; (283쪽)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콘스탄틴 대왕의 힘으로 교회에 평화가 찾아온 후로 교회의 수준이 갑자기 저하된 것을 한탄하여 광야의 금욕 생활에 나간 사람들이 허다하였다"

사단은 니케아 회의를 통해 일단 승리하였으니 성경에 기록된 "이 뿔이 성도들로 더불어 싸워이기었더니"(단 7:21) 하신 말씀을 이룬 것이었다. 그러나 마귀와 그의 세력들은 두려워해야 할지니, 기록된 바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들을 위하여 신원하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가 나라를 얻었더라"(단 7:22) 하신 말씀도 있기 때문이다.

마귀에 의해 빼앗겼던 생명의 진리는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가 시온에 오심으로 회복되었으며 때와 법을 되찾은 성도들은 그 진리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을 얻고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것이다.

하나님의 진리인 유월절이 폐지되고 이방 신의 축제일이던 이스터와 그리스도의 부활절을 혼합한 새로운 부활절(춘분 후 만월 다음의 첫 일요일)을 정했으므로 그들은 이 논쟁을 "부활절논쟁"이라 부르며 과거 동방교회에서 마치 부활절을 1월 14일에 지켰던 것처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록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관점일 뿐이다.

진리책자 "하나님의 비밀과 생명수의 샘"에는 이 내용을 "유월절에 대한 쟁론"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본란의 주제를 "니케아 회의와 유월절 논쟁"이라고 정하게 된 것이다.

현재 세상에 남아 있는 교회사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진리교회에 의해 기록된 것이 아니라 진리를 변개시킨 불법자들이 그들의 관점에서 기록했기 때문에 그들의 주장을 담고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교회사를 읽을 때에는 이러한 상황을 인식하고 살펴야 할 것이다.

어그러지지 않고 그대로 기록된 교회사로서 현재까지 존재하는 것은 성경뿐이다.
진리는 절대적으로 성경에 기초하고 있다. 우리가 지키는 유월절과 무교절, 부활절 … 등 모든 진리는 예수님과 사도들에 의해 기록된 온전한 교회사인 성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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