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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백 데나리온과 일만 달란트
‘데나리온’이나 ‘달란트’는 성경시대의 화폐 단위입니다.

1 데나리온은 무게가 약 4g인 로마의 은화(銀貨)로, 거기에는 가이사의 초상과 글이 새겨져 있었습니다(마 22:15∼22 참조). 1 데나리온은 군인들이나 품꾼들의 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액수였고, 헬라의 은화 1 드라크마와 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 20:1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주인과 같으니 저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 ”

‘일백 데나리온과 일만 달란트’라는 주제를 선정하게 된 것은 화폐의 단위가 중요해서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비유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께 입은 은혜가 얼마나 큰가, 그리고 형제 자매들의 실수나 허물들은 얼마나 작은 것인가 하는 사실을 정확히 이해하여 하나님께 대한 감사함과 믿음의 식구들과의 우애가 더욱 돈독해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준비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베드로가 예수님께 묻기를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리이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하셨습니다(마 18: 21∼22 참조).

그리고 계속해서 탕감에 대한 비유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마 18:23∼27 “이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회계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회계할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한대 그 종이 엎드리어 절하며 가로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1 달란트는 6,000 데나리온으로 6000일, 즉 16년간의 품삯에 해당합니다. 요즘의 화폐 가치로 환산해 본다면 하루 품삯을 70,000원 정도로 계산할 때 4억 2천만 원쯤 됩니다.
1 달란트만 해도 이 정도인데 일만 달란트라면 6천만 데나리온으로, 16만년을 매일 벌어서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하는 어마어마한 액수입니다.

일만 달란트씩이나 빚졌던 자들은 바로 우리입니다. 자신들의 힘으로나 능력으로는 평생을 갚아나가도 다 갚지 못할 큰 죄를 지었던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께서 새 언약을 주시어 용서해 주신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16만년 동안 사는 사람도 없겠거니와 설령 16만년 동안 살면서 갚는다고 다 갚을 수 있는 죗값이겠습니까?

그러한 엄청난 죄의 빚을 아무 조건 없이 탕감 받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형제의 허물을 사랑으로 용서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일만 달란트의 빚에 해당하는 우리의 죄악에 비한다면 형제의 허물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비유 속에서는 형제의 허물을 용서치 못하는 이를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 받고도 자기에게 일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을 괴롭히는 악한 종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마 18:28∼30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 받은) 그 종이 나가서 제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 하나를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가로되 빚을 갚으라 하매 그 동관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나를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저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자신은 16만년 동안 한 푼도 쓰지 않고 벌어야 모을 수 있는 6천만 데나리온을 탕감 받았으면서도 자신에게 100 데나리온(100일의 품삯 정도) 빚진 사람을 용서해주지 못했다면 얼마나 민망한 일이겠습니까?

믿음 안에 있는 우리도 가끔은 형제 자매들의 실수나 허물로 인하여 책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사랑하는 마음으로 훈계하고 충고하여 잘못을 고쳐주려 하는 것은 옳은 일이겠습니다마는 이러한 일을 할 때에도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고, 자신이 정말 형제 자매를 위하는 마음으로 충고하려는 것인지 판단한 후에 하는 것이 은혜로운 방법일 것입니다.

그러나 형제 자매의 실수나 허물로 인하여 미워하거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라는 식의 마음을 갖는다면 이 얼마나 민망한 일이겠습니까? 바로 100 데나리온 빚진 동관을 용서해주지 못하고 옥에 가둔 자와 같은 입장이 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은 계속됩니다.

마 18:31∼34 “그 동관들이 그것을 보고 심히 민망하여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고하니 이에 주인이 저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이 얼마나 이치에 합당한 비유의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용서하시고 평생 갚아도 다 갚지 못할 죄를 용서해 주셨거늘 형제 자매들의 조그마한 허물을 용서해 줄 수 없겠습니까?

우리 모두는 완성품으로 지어져 가는 과정 중에 있습니다. 아직 하늘에서 지은 죄의 찌꺼기와 이 죄악 세상에서 물든 불순물들이 조금씩은 남아 있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더욱 간절히 바라는 가운데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마치시며 다음과 같은 말씀을 주셨습니다.

마 18:35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사실 우리가 하나님께 용서받은 것에 비한다면 우리가 용서해주어야 할 형제 자매들의 실수나 허물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었던 죄인이었지만 믿음 안에서 새 언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형제 자매들의 허물과 실수는 다 용서받을 수 있는 죄에 해당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문 중에 늘 우리의 가슴을 파고드는 문구가 있습니다.

마 6:9∼13 “…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 이 시대야말로 시온에 거하는 형제 자매들간의 아름다운 연합이 이루어져야 할 때입니다. 불화가 있는 곳에는 마귀가 틈을 타고 침입하지만, 화합이 있는 곳에는 마귀가 침투할 틈이 없기 때문에 배회하다가도 물러가게 마련입니다.

식구에 대한 불만이 생길 때는 ‘마귀가 또 나를 충동질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면 틀림없습니다.

옛적 가나안 땅의 관문인 여리고성을 점령할 때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한마음이 되어 외쳐서 여리고성을 무너뜨렸던 것처럼, 하늘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 있는 우리들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가운데 한마음이 되어 외쳐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말씀을 마음속 깊이 새겨야 할 때입니다.

“바다가 모든 더러운 것을 받아 정화시키듯이 모든 형제 자매들의 허물까지도 감싸줄 수 있는 바다같이 넓은 마음이 진정 아름다운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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