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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
오늘날 이 세상의 기독교인이라면 모를 사람이 없는 사도 베드로 - 2천년 전 이 땅에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충심으로 믿고 따랐던 사도 베드로의 믿음 생애는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귀감이 되고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육신의 생명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이 세상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데 앞장 섰던 사도 베드로의 믿음은 오늘날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상에 전파하는 우리들이 본받아야 할 정신이다.


이름의 뜻

베드로가 사도로 부르심을 입기 전에 가졌던 원래 이름은 시몬이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을 더해 주신다.

요 1: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아람어로 게바는 바위, 반석
헬라어로 베드로는 바위, 반석

막 3:16 "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사도로 부르실 때 시몬이었던 이름을 베드로(반석)로 고쳐 불러 주신 것은 다음과 같은 뜻이 담겨져 있다. 예수님을 구원의 반석이 되시는 그리스도로 믿기가 어려웠던 시절에 예수님의 근본을 정확히 깨달아 믿고 시인하며 충직스러운 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따랐던 베드로! 그의 거침없는 외침은 오늘날 우리들의 심령에 성령의 불길을 타오르게 한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사도로 부르심 받음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해변에서 고기를 잡아 생활하던 순박한 어부 베드로를 복음 전하는 사도로 부르신다. 오늘날 사람들은 베드로를 어부로 기억하지 않는다. 예수님을 충심으로 따르고 세상에 알려 복음을 전파하는 데 참으로 열정을 가졌던 훌륭한 사도 베드로로 기억한다.


영혼의 구원과 부활에 대한 소망

사도 베드로는 그가 기록한 베드로서를 통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의 목적과 소망에 대해서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믿음의 목적에 대해 베드로는 이렇게 정의한다.

벧전 1:8-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이로 보아 베드로는 영혼에 대한 개념을 정확히 깨닫고 오직 영혼 세계 즉 다른 차원의 세계에 대하여 몰두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그리스도를 따르는 소망에 대해 말하기를 그리스도 예수의 부활에 함께 동참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벧전 1:3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이렇듯 사도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를 때 영혼의 구원과 부활의 산 소망이 주어진다는 확고한 믿음의 목적의식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확고한 신앙관이 정립되어 있었기에 예수님의 신성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이고 오직 영생의 말씀(진리)만을 의지하였던 것이다.

눅5:5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맟도록(새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

요 6:66-68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모든 것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따름

마 19:27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베드로가 처음 예수님께 부르심을 입을 때 어부로서의 생계 수단인 그물을 버려두고 좇았다는 것은 삶의 목적이 육신적 생활에서 영적 생활로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육신의 배고픔을 해결하고 육신적 기쁨만을 위한 그 동안의 생활관을 버리고 비록 육신적으로는 괴롭고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내세의 기쁨과 만족을 위해 살며 영혼의 구원과 부활의 산 소망을 위해 사는 영적 생활관으로 바뀐 것이다.

그래서 어부로서의 베드로를 버리고 사도로서의 베드로가 된 것이다. 베드로가 단순히 그물만 버린 것은 아니었다. 그의 신앙관인 영혼의 구원과 부활의 산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버려야할 것이 참으로 많았다. 육신의 성품까지도 버리고 신의 성품에 참예하기를 힘썼다(벧후 1:4-7).

우리가 마지막 구원의 완성인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되기까지 단순히 그물만을 버린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성품 자체가 변화되어야 하는 것이다. 세상 말에도 어부들을 가리켜 뱃사람이라고 한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삶의 터전인 바다에서 밀려오는 험난한 파도와 폭풍우를 싸워 이겨내야 하기 때문에 그들의 거친 생활의 모습을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어부로서의 거친 성품이 온화하신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되기까지 순간 순간마다 버리고 또 버려야할 것이 어찌 그물 하나뿐이겠는가?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인간의 속성과 정욕, 교만과 자존심, 미움, 시기, 질투 등 참으로 버려야할 것이 많다.


그리스도를 충심으로 사랑함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베드로의 충심은 절대적이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예수님의 물음에 베드로는 지체하지 않고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대답했다.

예수님께서 생명의 떡에 관하여 가르침을 주실 때,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예수님께서 "너희도 가려느냐"고 물으실 때에도 베드로는 지체치 않고,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뉘게로 가오리이까" 하였다.

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대제사장들에게 잡혀 고난을 받고 죽게 될 것을 말씀하실때, "주여, 그리 마옵소서" 하고 예수님을 붙들고 간곡히 청한 제자도 베드로였다(마 16:21-22). 예수님을 잡으러 왔던 대제사장의 종들 중에 "말고"란 자의 오른쪽 귀를 검으로 베어버리며 예수님께 손대지 못하도록 막아섰던 제자도 베드로였다(요18:1-10).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축복

예수님께서는 충직한 신앙심으로 충성했던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허락하셨다(마16:18-19). 또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 전에 베드로에게 교회를 맡기셨다. 이 때에 예수님과 베드로의 문답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많은 깨달음을 준다.

요21:15-17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나를 사랑하느냐 …나를 사랑하느냐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오늘날 부르심 받은 우리들에게도 성령께서 이와 같이 무언의 질문을 하고 계신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우리는 당연히 "주여 그러하외다" 하고 마음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오는 충심어린 대답을 거침없이 할 수 있는 진실한 하나님의 아들딸들이 되어야 한다. 베드로처럼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거짓없고 꾸밈없는 진솔한 양심의 대답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

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던 베드로가 예수님께 부르심을 입었을 때, 그는 생계 수단인 그물을 버리고 삶의 터전인 갈릴리 해변을 과감히 박차고 일어났다. 사도로 부르심을 입었을 때 보여 준 용기와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서의 사명을 완수했던 생애는 오늘날 우리에게 많은 영적 감화를 불러 일으킨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베드로의 첫걸음은 육적인 세상의 미련보다 오직 영원한 영적 세계의 영광을 위한 주저없는 출발이었다. 그리스도께 우리가 부르심을 받았다면 우리도 베드로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의 결국은 영혼의 구원"이라는 정확한 믿음의 목적의식을 갖고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영적 세계에 몰두할 수 있어야겠다.

모든 것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좇은 베드로처럼, 오늘날 하나님의 귀한 자녀로 택함받고 부르심 입은 우리들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앙에 있어서 복음에 방해되는 불협화음을 제하고, "나"라는 일말의 자존심까지도 버리고 따라야겠다.

나의 영광을 위한 신앙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아름다운 신앙이 되자. 그렇게 한다면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는 질문에 "주여 그러하외다" 하는 확신에 찬 대답이 크게 메아리칠 것이다. 이어서 "내 양을 먹이라" 하시는 크나큰 사명을 주실 때에도 "아멘!"으로 화답할 것이다.

베드로가 하나님을 깨닫고서 이전의 어부로서의 삶을 버리고 사도로서의 길을 걸었던 강한 믿음, 어부의 신분으로 천국에 들어가기보다는 사도의 신분으로 천국에 들어갔던 모습, 오늘날 까지 세상이 그를 어부로서가 아닌 사도로서 기억하고 인식하는 결과를 바라볼 때에 우리도 장차 하늘나라 유리바다 위에 섰을 때 때묻은 육적인 모습보다는 성령으로 거듭나 하늘의 아름다운 보석으로 빛나는 영혼의 모습으로 천사들의 눈에 비추어져야겠다.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한 베드로의 고백처럼 마지막 영원한 생명수를 허락하시는 성령과 신부를 세상 다하는 날까지 따르며 이곳 진리의 성읍 시온에 남아 있는 십사만사천 영광의 무리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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