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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Jonah)
하나님의 부르심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데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시대마다 선지자를 세우십니다.

렘 1장 5절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모든 사람이 원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요, 싫다 해서 거역할 수도 없는 것이 선지자의 사명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따르면 그 결과로 하늘의 큰 축복이 임하겠지만 싫다 하여 거역한다면 그 결과는 멸망으로 마쳐집니다. 옛적 성경의 역사 가운데 앗수르 제국의 수도 니느웨가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악하여 죄악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죄악에서 돌이키고 회개시켜 구원하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니느웨 백성을 깨우치려고 요나를 선지자로 세우셨습니다.

욘 1장 1∼2절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심판만이 목적이었다면 선지자를 세우실 필요도, 그들에게 선지자를 보내실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패역한 세대에 심판을 목적으로 삼으시기보다는 그때마다 선지자를 보내어 회개를 촉구하시고 회개하는 자에게 구원의 자비를 베푸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악독이 하나님 앞에 상달될 정도로 패역했던 니느웨 성읍에도 변함없으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는 선지자를 보내고자 하셨는데 그 막중한 사명을 요나에게 맡기셨던 것입니다.


도망자 요나
하나님께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은 요나는 두렵고 떨리었습니다. 거대한 제국 앗수르, 그것도 그들의 가장 중심부인 수도 니느웨에 들어가서 그들의 멸망을 외치고 회개를 촉구한다는 것이 인간으로서는 실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낯선 이방인이 와서 자기 나라의 멸망을 외칠 때에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 낯선 이방인을 죽이려고까지 들 것이 아니겠습니까? 설사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위안을 해 보더라도 최소한 돌팔매질, 손가락질, 비방, 조소, 미친 사람 취급은 당하지 않을까? 또 몽둥이로 때리고 감옥에 가두지는 않을까? 각종 두려움의 상상과 엄습해오는 공포감 때문에 요나는 가장 쉬운 도망자의 길을 택하였습니다.

욘 1장 3절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선가를 주고 배에 올랐더라”


요나의 회개
하나님의 부르심을 저버린다면 과연 그 사람의 결과가 어찌 될 것인가? 지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생각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저버린 요나의 미래는 이제 예측할 수 없는 불행에 휩싸이면서 그 결과가 멸망이라는 막다른 길목에 들어섰습니다. 하지만 인자(仁慈)가 크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는 멸망의 길을 가는 요나를 그냥 내버려두시지는 않으셨습니다. 강권하시는 사랑으로 회개의 길을 열어주시고 결국에는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시키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다에 풍랑을 내리시어 요나가 탄 배가 위험에 처하게 하시고 뱃사람들로 하여금 제비를 뽑아 재앙이 요나로 인한 것임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요나는 바다에 던져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해 놓으셨으며 그 고기로 하여금 요나를 삼키게 하셨습니다. 물고기 뱃속에 들어간 요나는 삼일 동안 지내면서 하나님께 간절한 회개의 기도를 하였습니다.

욘 1장 4절 “여호와께서 대풍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 폭풍이 대작하여 배가 거의 깨어지게 된지라”

욘 1장 15절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의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욘 2장 1∼9절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삽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 하니라”

욘 2장 10절 “여호와께서 물고기에게 명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전도자 요나
만약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죽음 직전까지 갔을 때 회개하기를 거부하고 마음을 돌이키지 않았다면 요나는 정말 죽음의 길에서 돌아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물고기 뱃속에서 당하는 고통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치 아니하고 오히려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께 자비를 구하는 간절한 회개의 기도를 드림으로 다시 한번 하나님의 은혜가 요나에게 임하였고 전도자의 길을 걷게 되었던 것입니다.

욘 3장 1∼4절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극히 큰 성읍이므로 삼일길이라 요나가 그 성에 들어가며 곧 하룻길을 행하며 외쳐 가로되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에게 아첨하는 말이나 칭찬해 주는 말을 듣기 좋아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드러내고 책망한다면 듣기 싫어합니다. 오늘날 청소년들의 비행을 보고도 그들의 잘못을 야단치고 책망하여 고쳐 보려는 어른보다 그냥 못 본 척 지나쳐버리는 것이 보편화하여 있는 것과 또 예로부터 임금의 잘못된 허물을 직언하는 옳은 신하가 적었다는 역사를 바라보더라도 상대방의 잘못을 드러내고 고치도록 종용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닌 듯싶습니다. 그러기에 패역한 성읍이나 나라에 가서 그들이 하나님께 대해 범죄한 일이나 허물을 드러내고 거침없이 하나님 심판의 경고를 알리며 회개를 종용시키는 선지자의 길은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더욱이 한 나라의 중심부에 들어가 그 나라의 멸망을 부르짖고 회개를 촉구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던 요나! 비록 처음에는 두려움이 앞서 도망가는 부끄러움을 보이기도 했으나 물고기 뱃속에서의 고통의 기간이 오히려 요나에게는 유익이 되었고, 하나님의 강권하시는 사랑 속에서 온전한 회개를 이루어 부끄럽지 않은 전도자의 길을 걷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이 강력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요나는 거침없이 외치고 알렸습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니느웨 백성들의 회개
하나님 앞에 회개할 수 있는 사람은 진정 행복합니다. 회개를 이룬다는 것은 곧 구원의 기쁜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못하여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기도 하고,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여서 회개할 기회를 놓치기도 합니다. 때로는 잘못을 지적하여 주어도 교만하고 오만하여 도무지 회개할 마음을 갖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모두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처럼 니느웨성 사람들도 악으로 치닫고 패역한 길로 가고 있었지만 누구하나 그들의 잘못을 책망하거나 지적해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회개는 생각도 못하고 점점 죄악의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때 그들을 돌아보시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멸망의 기별을 통해 그들의 마음에 경종을 울려 주신 분이 바로 사랑의 하나님이셨습니다. 요나를 선지자로 세우시고 그들에게 보내 주셨던 것입니다. 그때 요나의 기별을 들었던 니느웨 사람들의 회개는 하나님을 감동시켰습니다.

욘 3장 5∼8절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무론 대소하고 굵은 베를 입은지라 그 소문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조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으니라 왕이 그 대신으로 더불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가로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떼나 양떼나 아무 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를 입을 것이요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와 법도를 몰랐으며 하나님 섬기는 법도 몰랐던 무지한 이방인이었다 할지라도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 요나의 기별을 겸손히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이 누구냐고 윽박지르고 요나를 험하게 대할 수도 있었겠지만 니느웨 사람들은 남을 탓하기 전에 먼저 자신들의 잘못과 허물을 돌아보는 마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들이 섬겼을 법한 우상에게 의뢰하거나 무릎 꿇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금식하며 회개하는 그들의 모습이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아름다웠겠습니까? 또 그 큰 제국을 통치하는 니느웨 왕의 모습은 어떠하였습니까? 당장 왕의 옷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아 사람은 물론 짐승까지도 금식하라 선포하였으며,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회개하는 그 모습은 왕의 모습이 아니라 진정으로 용서받고 싶은 연약한 죄인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겸손히 회개하는 니느웨 백성들을 용서하시고 벌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진실한 회개의 모습은 아름다운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이를 기쁘게 받으시는 것입니다.

욘 3장 10절 “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그리스도와 요나의 표적
요나서에 기록된 내용은 단순히 옛적 역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장래에 이루어질 예언으로 기록해 주셨습니다. 이 땅에 오시는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내용의 여러 예언을 이루시는데, 그중에 요나서의 예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약 이천 년 전 이스라엘 땅에 오셨던 예수님께 서기관들이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못했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인지라 예수님이 정말 그리스도라면 보고 믿을 만한 표적을 보여줘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으로 표적을 원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마 12장 39∼40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

마 16장 21절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이 말씀처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희생당하시고 무덤에 장사되어 땅속에 계시다가 과연 삼 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이 예언을 이루셨으며 당신께서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명백히 증거해 보이셨습니다. 또한 요나가 니느웨성의 멸망을 외쳤듯이 요나의 표적을 가지고 오신 예수님께서도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셨습니다.

눅 19장 41∼44절 “가까이 오사 성(예루살렘)을 보시고 우시며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옛적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의 전도를 듣고도 회개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요나보다 더 큰 그리스도께서 친히 오셔서 그들을 구원하시려고 전도하였으나 듣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함으로 결국 저주를 받아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A.D. 70년, 로마 장군 디도(Titus)가 이끄는 군대들에 의하여 처참하게 멸망을 할 때, 죽은 자가 110만 명이요 포로로 붙잡혀간 자들이 9만 7천이나 되었습니다.


심판 때의 니느웨 사람들
초림 때 요나의 표적을 가지고 오셨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외치셨고, 결국 40년 후에 로마에 의해 멸망을 당하였습니다. 초림 때 있었던 예루살렘의 멸망은 마지막 때 세상 멸망으로 이어지는 예언입니다. 또한 마지막 때 요나의 표적이 다시 한번 나타나게 될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눅 21장 20∼35절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며 …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 말씀은 니느웨성 멸망의 예언이 예루살렘 멸망으로 이어졌고, 예루살렘이 멸망했던 예언은 마지막 세상의 심판으로 이어진다는 예언입니다. 세상 끝에도 요나의 표적이 다시 한번 등장하게 되며 세상 멸망을 외치게 됩니다. 이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들을 정죄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마 12장 41절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심판 때에 등장하는 니느웨 사람들이 누구겠습니까? 이미 수천 년 전 죽은 니느웨 사람들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 아니라 예언적인 니느웨 사람들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옛적 요나의 전도를 듣고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였듯이 하나님의 정하신 마지막 예언의 기별을 듣고 회개하는 사람들이 바로 니느웨 사람들이 됩니다. 마지막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상을 정죄하게 된다는 예언의 말씀처럼 오늘날 우리는 이 세상에 임할 재앙을 선포하여 세상을 깨우쳐야 하겠습니다. 또한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을 회개시켜 구원에 이르게 한 것처럼 우리도 이 세상을 향하여 회개를 촉구하는 복음의 나팔을 크게 불어 외치며, 많은 사람을 회개시켜 시온으로 인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
먼저, 시대마다 참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세우신다고 하셨는데 오늘날 부족하기만 한 우리를 하나님의 복음 사업에 선지자로 세워주신 은혜에 한없이 감사드려야겠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참 선지자들, 하나님 편에 섰던 의로운 선지자들은 비록 이 땅에서 핍박과 환란을 받으며 고통 가운데 처할지라도 오직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며 살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늘나라의 영광을 유업으로 받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를 택하여 주신 것도 바로 하늘나라의 영광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천지를 지으시고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여 주셨습니다. 또 죽어 가는 많은 영혼을 하늘의 생명 양식으로 살리는 가장 고상한 일을 맡기셨습니다. 옛적 요나를 택하여 니느웨를 깨우치는 선지자로 세우신 것처럼, 오늘날 우리를 택하셔서 이 세상을 깨우치는 선지자로 세워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진정 감사드리며,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아멘”으로 따르는 기쁨의 자녀가 되어야겠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복음 역사에 도망자의 신앙이었다면 이제는 반전하는 신앙이 되어 회개하는 전도자의 모습이 되어야겠습니다.

요나의 전도로 니느웨 사람들을 회개시키신 하나님의 역사가 오늘날 세상을 회개시키는 역사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꼭 진리를 전해야겠습니다.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을 깨닫지도 못하고 살아가는 불쌍한 많은 사람에게 재앙을 면하는 새 언약을 알려서 구원의 길로 인도해야겠습니다.

롬 10장 14∼15절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그렇습니다.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을 수가 있겠습니까? 니느웨 백성들이 회개하기까지는 요나의 전도가 있었듯이, 이 세상을 깨우치고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기까지는 먼저 부르심 받은 우리 모두의 복음 전하는 행위가 없고서는 안 됩니다. 도망자 요나의 모습은 부끄러웠지만, 전도자 요나의 모습은 얼마나 사랑스럽습니까? 회개한 뒤의 요나의 모습처럼, 하늘 영원한 우리의 나라가 너무나도 임박한 이 가슴 벅찬 한 해에는 우리의 신앙도 도망자나 방관자가 아닌 도전적인 전도자가 되도록 합시다. 머지않아 십사만 사천 굳게 서게 될 시온의 역사에 성령과 신부 되시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높이 받들어서 새 언약 복음의 나팔을 힘차게 불어 회개를 촉구합시다.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너는 일어나 세상으로 나가 새 언약을 담대히 외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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