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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sheep listen to my voice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2015-02-26 127508

우리는 영원한 천국을 목표로 믿음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믿음의 광야에는 사람들이 보기에 좋게 행하는 신앙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신앙의 삶을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역사를 바라보면 사도들과 성도들이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반문하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신앙의 길을 정했던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갈 1장 10절). 이 시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신의 성품에 참여하려 애쓰고, 어머니의 가르침을 따라 항상 웃으며 살아가고자 하는 이유도 하나님 보시기에 좋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삶을 선택해야 하는데 때로는 자기 입장에서, 사람의 관점에서 좋은 쪽의 삶을 선택할 때가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라도 항상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기록될 믿음의 삶을 살아가도록 합시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던 창조의 역사

하나님께서는 뜻을 두고 이 지구와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바라보면 만물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응하여 지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창 1장 3~5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 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 1장 9~10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께서 맨 처음 빛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만들어진 빛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을 나누라 명하시매 그대로 되고, 바다와 뭍을 구분하도록 말씀하시매 그대로 될 때도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진행되고 이루어지는 모든 과정을 하나님께서 좋게 보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창 1장 1 1~31절).

천지와 만물이 하나님 말씀에 순응하듯, 만사를 하나님 보시기에 좋고 하나님의 기준에서 좋은 쪽으로 행해야 합니다. 개인의 생각대로, 사람이 보기 좋은 대로 하려 하니 순종이 아닌 불순종이 되고,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와 법도를 따르지 못하고 불법을 추구함으로 멸망을 자초하면서도 그 길을 오히려 좋게 여기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른 길을 선택하고 따르는 신앙을 견지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던 선진들의 믿음의 행적들을 통해서, 오늘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신앙의 모습을 한번 점검해 봅시다.

롬 15장 4~5절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이제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성경에는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던 여러 가지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선진들의 행적을 성경에 기록하시고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길이 어떤 길인가를 우리에게 교훈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던 선진들의 믿음

옛적 다니엘의 세 친구인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우상을 숭배하라는 왕의 명령을 거부하고 극렬히 타는 풀무불 속에 던져졌습니다. 풀무불에 던져지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한 그들을 하나님께서는 보시기에 좋게 여기셨습니다. 목숨을 걸고 말씀대로 준행하는 그 믿음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기 때문에 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서 그들을 건져주셨던 것입니다(단 3장 1~30절).

다니엘도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믿음의 행적을 남겼습니다. 다니엘은 예루살렘을 향해 열린 창 앞에서 하루 세 번 하나님께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러자 정적들이 그를 해하려고 계책을 꾸며, 왕 외에 다른 신이나 사람에게 구하는 자는 무조건 사자 굴 속에 집어넣도록 하는 새로운 법을 만들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서도 다니엘은 하나님을 향한 기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에 전념하는 그 모습 역시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자 굴에 던져진 다니엘을 구원해주시고 그를 참소한 자들로 하여금 사자의 밥이 되게 하셨습니다(단 6장 1~28절).

하나님 보시기에 좋게 행하는 사람들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셨고 그들에게 더 큰 영광을 허락하셨습니다. 성경을 면밀하게 분석해보면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대로 피조물들이 순종했을 때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기록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말씀대로 행하고,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 말씀을 순종하는 그 자체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행위입니다.

히 11장 33~38절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환난과 핍박에도 믿음을 지킨 초대교회 성도들 역시 하나님께서 보시고 아름답게 여기셨습니다. 그들은 로마의 탄압과 압제 속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어떠한 어려움과 고난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었고 생명보다 귀히 여겼기 때문에 때로는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고 때로는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면서도 영적으로 승리한, 진리의 용사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로마 정부와 손잡은 로마 가톨릭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길보다 세상이 볼 때 좋은 길을 택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성경에 없는 일요일, 크리스마스 등 로마 태양신교의 교리가 마치 기독교 교리인 양 교회로 유입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사랑한 성도들은 그에 영합하지 않고 끝까지 진리를 따랐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길을 선택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성령과 신부를 따르는 성도들

우리도 그들처럼,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길을 선택하도록 합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경이라는 귀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담고 있습니다.

딤후 3장 15절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전해주시고 구원에 나아올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이러한 성경의 특성을 이해한다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순종함으로써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삶을 살아가
야 하겠습니다.

계 22장 18~19절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하나님의 말씀에 다른 내용을 추가해서도 안 되겠고 있는 말씀을 빼서도 안 되겠습니다. 어떤 말씀을 그대로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가장 좋았더라’ 하실지, 바로 앞 구절에서 그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계 22장 17절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성령과 신부의 부르심에 응하는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나아와 생명수의 진리 가운데 거하게 되는 순간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가장 좋은 장면이 되겠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라 하시매 그대로 나누어졌던 모습도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지만, 이 시대에는 성령과 신부께서 오라 하실 때 부르시는 그 음성에 그대로 순종하고 나아오는 사람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입니다.

어머니로 말미암은 약속의 자녀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성령시대에 성령과 신부로 오셔서 우리에게 약속을 주시고 우리를 약속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갈 4장 28~29절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은 영원한 생명입니다(요일 2장 25절). 영생을 약속받은 ‘약속의 자녀’들은 핍박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받은 바 약속이 너무나 복되고 귀한 것이기 때문에 귀한 것을 빼앗고자 사단이 방해하는 것입니다. 이 약속만큼은 하나님께서 과거 훌륭했던 믿음의 선진들이 아닌, 오늘의 우리를 위해 예비해 두셨습니다.

히 11장 35~40절 “…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세상이 감당치 못할 큰 믿음을 가졌던 초대교회 성도들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은 받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생명은 오직 어머니로 말미암아 탄생하듯, 하늘 어머니로 말미암아서 약속의 자녀들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성령과 더불어 생명수를 주시는, 신부이신 예루살렘 하늘 어머니께서 등장하시기 전에는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가 탄생할 수 없습니다(계 12장 9~10절, 갈 4장 26~31절).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게 여기시는, 여인의 남은 자손들입니다(계 12장 17절). 이사야서에서는 우리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사 66장 10~14절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여 다 그와 함께 기뻐하라 다 그와 함께 즐거워하라 그를 위하여 슬퍼하는 자여 다 그의 기쁨을 인하여 그와 함께 기뻐하라 너희가 젖을 빠는 것같이 그 위로하는 품에서 만족하겠고 젖을 넉넉히 빤 것같이 그 영광의 풍성함을 인하여 즐거워하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그에게 평강을 강같이, 그에게 열방의 영광을 넘치는 시내같이 주리니 너희가 그 젖을 빨 것이며 너희가 옆에 안기며 그 무릎에서 놀 것이라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너희가 이를 보고 마음이 기뻐서 너희 뼈가 연한 풀의 무성함 같으리라 여호와의 손은 그 종들에게 나타나겠고 그의 진노는 그 원수에게 더하리라”

엄마 품에 안겨서 젖을 넉넉히 먹고 엄마와 함께 즐거워하는 어린아이를 생각해보십시오. 그 이상의 큰 만족과 기쁨은 없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이러한 행복과 축복이 허락되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성령과 신부의 부르심에 부응한 사람들입니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하나님 보시기에 어떠하겠습니까?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고 사랑스러운 자들입니다. 성령과 신부로 임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고 그 가르침을 지키기 위해서 끝까지 노력하는 이들이야말로,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입니다.

말씀대로 어머니를 따르는 아름다운 믿음의 길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하늘 어머니의 존재를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또한 성경의 가르침을 통해, 내가 너희에게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다고 하셨고 이 성경 말씀에서 절대 더하지도 말고 빼지도 말라 하셨습니다.

성경의 말씀을 더하거나 빼지 않는 가운데서 어머니의 존재를 논하게 되면 어머니 하나님을 당연히 믿어야 합니다. 성경 말씀은 우리에게 어머니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지상의 이치는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히 8장 5절)라 하신 말씀에 비추어보면, 땅에 어머니가 계신데 하늘에 어머니가 안 계신다는 주장은 그림자는 있는데 실물이 없다는 궤변밖에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루살렘 어머니를 믿는 믿음을 가지고 그 가르침을 은혜롭게 받들고 순종해야 하겠습니다. “어머니 가시는 곳에 저도 갈 것이고 어머니의 백성이 저의 백성이 될 것입니다, 끝까지 어머니와 함께하겠습니다” 했던 룻의 효행이 왜 성경에 기록되었을까 생각해보십시오.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주는 책입니다. 뜻을 바르게 이해하고 성경의 장면, 장면을 보면 구원과 무관한 부분이 없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신앙의 길을 우리가 걸어가고 있다는 데 더욱 자부심과 긍지를 가집시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는 약속의 자손으로 선택받아 무한히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 축복은 어머니로 말미암아 오게 된 것입니다. 이 축복이 얼마나 큰지 자각하고, 우리를 여인의 남은 자손으로서 영생의 축복과 약속 가운데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엘로힘 하나님께 더욱 감사와 영광과 찬양을 돌립시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존재가 되려면 말씀대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길을 따르는 것 역시 말씀대로 사는 삶이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행하신 본을 따라서 서로 뜻을 같이하여 한마음과 한뜻을 가지고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것입니다. 여인의 남은 자손, 약속의 자손으로서 허락된 영생의 면류관을 끝까지 굳게 잡아서 기쁨과 환호 속에 찬란한 하늘 영광 가운데 나아가는 시온 가족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항상 기뻐하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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