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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sheep listen to my voice
믿음과 순종의 관계
2018-07-27 2656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소중한 인연, 가족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행복이 가득한 천국의 축소판으로 인류에게 ‘가정’이라는 사랑 공동체를 허락하셨습니다.

영적으로 바라보면 우리는 영적인 가족 구성원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는 영의 아버지 어머니께서 계시고, 영의 형제자매들이 있습니다. 성경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말씀을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라 알려주는 동시에,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는 말씀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 가르치고 있습니다(마 22장 37~38절, 엡 6장 2절). 육신의 부모님도 공경하고, 영의 부모님이신 하나님께도 공경과 효를 다하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부모님이 자녀에게 가장 바라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부모님은 자녀들이 부모님의 뜻에 순종할 때 가장 기뻐하십니다. 마찬가지로, 하늘 아버지 어머니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일이 있다면 ‘순종’입니다. 우리의 신앙을 되돌아보면서, 믿음과 순종의 관계를 성경을 통해 함께 살펴보도록 합시다.

순종으로 온전해지는 믿음

신앙생활에 있어서 핵심 요소가 있다면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고, 어떠한 영적 변화도 일어날 수 없으니 믿음은 우리 신앙생활에서 참으로 중요한 부분이라 하겠습니다.

성경은 믿는다고 말만 하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 행함과 결부되어야 온전한 믿음이라 규정합니다(약 2장 14~26절). 여기서 행함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을 뜻합니다. 믿음은 순종을 통해 측정할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이 볼 수 있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순종입니다.

인류와 하나님의 관계가 깨어지게 된 근본 요인은 불순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말씀하신 선악과에 아담과 하와가 불순종함으로 손을 대었고, 그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아담과 하와는 에덴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창 2~3장).

창세기에 기록된 아담과 하와의 범죄는 하늘에서 우리가 범죄하고 이 땅으로 쫓겨 내려올 때의 상황을 이해하기 쉽게 보여주는 모형입니다. 그렇다면 죄인 된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불순종으로 멀어진 하나님과 자녀의 관계는 오직 순종으로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도 순종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히 5장 8~10절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이시요 영존하시는 아버지[聖父]이시지만, 아들[聖子]의 입장으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께 순종하시는 믿음의 삶을 사셨습니다(사 9장 6절, 빌 2장 5절 참고). 하늘 부모님과 자녀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순종이라는 점을 깨우쳐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을 배워 온전하게 되셨다고 하셨습니다. 순종 없이는 우리 신앙이 완성에 이를 수 없습니다. 로마서에서도 순종이 인류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근원이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롬 5장 18~19절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앞에서 언급한 한 사람은 아담을 뜻하고, 뒤의 한 사람은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아담 한 사람의 불순종이 온 인류를 죄인으로 만들었고,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순종이 죄인 된 인류를 의롭게 하고 죄 가운데서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이처럼 불순종으로 죄인이 된 인류가 의인으로 변화되기까지 그리스도께서 어떤 삶을 사셨는지 그 자취를 따라가봅시다.

예수님께서 보이신 순종의 본

십자가에 못 박혀 운명하시기 전날 밤,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을 지키시고 감람산으로 가셔서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여기서 순종을 우리 마음에 깊이 새겨주신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눅 22장 42~46절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 …”

다가올 십자가의 고난을 아시는 예수님의 심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흐르는 땀방울이 핏방울같이 되었다 했으니 얼마나 그 기도가 간절하고 애절했겠습니까? 그럼에도 “내 원대로” 하지 말고 “아버지의 원대로” 이루시기를 간구하시며,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고통과 수욕, 죽음까지도 순종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이 모두가 우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이신 것입니다(요 13장 15절). 세족예식의 본에서부터 유월절 지키는 본, 안식일 지키는 본, 또 아버지 하나님의 모든 뜻을 순종하는 본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걸어야 할 믿음의 길을 친히 본보여 주셨습니다.

요 5장 30절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요 12장 47~50절 “…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나 보내신 이’, 즉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온전히 준행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으며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그대로 이르셨다고 하셨습니다.

사복음서를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이 모두 순종의 연속입니다. 탄생에서부터 운명하시는 그 순간까지 매사에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셨습니다. 말씀 한마디도 임의로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 전하라 하신 가르침을 사람들에게 일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십자가의 고통도 친히 감내하셨습니다. 그리고 ‘다 이루었다’는 마지막 말씀을 남기시고 복음 생애를 마치셨습니다.

요 19장 28~30절 “…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물론 예수님께 해당되는 구약성경의 모든 예언도 이루셨지만, ‘다 이루었다’는 말씀 속에는 무엇보다 아버지께서 행하라 하신 일을 다 이루셨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이처럼 아버지의 뜻대로 말씀하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신, 순종의 삶이었습니다.

순종하는 자가 들어가는 천국

오늘날 사람들은 날마다 쏟아지는 수만 가지 정보를 접하면서, 상식을 통해 사물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라 해도 자기 생각과 일치하지 않으면 따르려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믿는다 하는 사람들도 자기 고집과 주장을 하나님 말씀보다 앞세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 안에 나 자신이 살아 있으면 절대 행할 수 없는 것이 순종입니다. 그러나 내 속에 오직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면 순종은 쉽습니다. 영원한 소망이 있으니 하나님의 말씀에 즐거이 순종할 수 있습니다.

요 14장 21절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하나님의 계명을 온전히 지키려면 순종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순종치 않고는 계명을 지킬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사람이 천국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7장 21절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곧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아무리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일요일이 지켜졌고 또 크리스마스가 지켜졌다 해도 그것이 성경에 없는 변질된 교리라면 배척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안식일과 유월절을 지키는 것이 말씀에 순종하는 자의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구속받은 성도들은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들입니다(계 14장 1~5절). 또한 하나님께서는 “너희의 복종이 온전히 될 때에 모든 복종치 않는 것을 벌하려고 예비하는 중에 있노라” 하셨습니다(고후 10장 6절). 심판의 날에 양과 염소를 구분하신다는 비유의 말씀을 생각할 때, 순종은 양에 속한 사람들이 가지는 믿음이라 볼 수 있습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는다”고 하셨듯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 여부가 결국 심판의 날에 하나님께서 의인과 악인을 구분하시는 가장 중요한 기준입니다(마 25장 31~46절, 요 10장 27절).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죽기까지 순종하는 삶을 본보여주신 것입니다.

순종으로 믿음을 입증한 선진들

믿음과 순종은 불가분의 관계이며 믿음은 순종으로 증명됩니다. 설령 믿음이 있노라 자부하는 사람이라 해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 믿음은 없는 것과 같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말씀에 항상 순종합니다. 한번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시려고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 명하셨습니다. 백 세에 얻은 귀한 아들을 번제로 드린다는 것은 아비로서 차마 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즉시 순종했습니다. “백 세에 낳은 자식을 빼앗아가시면 어떡합니까”, “다른 제물을 드리면 안 되겠습니까” 하는 한마디 반문도 없이, 곧바로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산을 향했습니다. 산길을 걸으며 이삭이 물었습니다. “아버지, 불과 나무는 있는데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 있나이까?” 그때 아브라함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아들아,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께서 친히 예비하신단다.” 이렇게 해서 산에 올라가 말씀대로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고 했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아브라함아,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 믿음이 얼마나 큰가를 알게 되었다.” 가장 어려운 시험을 순종으로 치러낸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큰 복을 받았습니다(창 22장 1~18절).

노아도 믿음이 참으로 대단했습니다. 그 시대에 상상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 명하실 때, 노아는 주신 말씀 그대로 방주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다 순종함으로써 믿음을 지키고 자신과 온 가족이 구원을 받았습니다(창 6~7장, 히 11장 7절).

여호수아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여리고성을 칠일째 일곱 바퀴 돌고 외치기만 했는데 어떻게 됐습니까? 사람의 생각에는 ‘성 주위를 돌고 외친다고 해서 과연 성이 무너질까’ 싶지만 순종했을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3차원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 이상의 고차원 세계에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어떻게 운용하시는지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어떤 말씀을 주셔도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하겠습니다. 당장은 그 뜻을 알지 못하더라도 이후에는 깨닫게 될 것입니다(수 6장, 요 13장 7절).

기드온의 용사 300명이 13만 5천 명의 미디안 대군을 물리칠 때도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상상치도 못할 방법을 동원하셨습니다. 처음 이스라엘 군대가 3만 2천 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두려워 떠는 자들을 돌려보내니 2만 2천 명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남은 1만 명으로 싸운다 해도 수적으로 열세일 텐데 하나님께서는 그도 많다고 하시며 시냇가에서 군사들을 시험하시고 300명만 선발하셨습니다.

기드온은 말씀에 순종해 300명의 군사와 함께 야음을 틈타서 적진으로 침투했습니다. 모두가 곤하게 자는 시간에 항아리를 깨트리고 횃불을 높이 들면서 나팔을 불자, 놀란 미디안 군사들은 눈앞에 보이는 사람을 전부 적으로 간주하고 서로를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미디안 군사는 거의 전멸하고 이스라엘 군대는 대승을 거뒀습니다. 순종이 이처럼 승리를 가져왔습니다(삿 6~7장).

출애굽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가 앞을 가로막고 뒤에는 애굽 군대가 추격해오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졌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를 향해서 내밀라. 그러면 바다가 갈라질 것이다.” 모세가 지팡이를 내밀자, 말씀대로 바다가 갈라져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사히 건널 수 있었습니다(출 14장).

선진들의 믿음은 모두 순종으로 증명이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언제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여호수아의 여리고 정복이 그러했고, 기드온의 승리가 그러했고, 모세의 기적도 마찬가지입니다. 순종이 없는 곳에는 믿음의 세계가 형성될 수 없고, 믿음이 형성되지 않은 곳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일러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순종할 때 모든 축복이 임하리라

믿음이 돈독했던 아브라함과 노아는 무엇으로 자신들의 믿음을 증명했습니까? 믿음이 출중했던 사도 바울은 무엇으로 자신의 믿음을 증명했습니까? 모두 순종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온전케 되셨고, 만유 위에 높임을 받으시고 모든 하늘 영물과 천사보다 뛰어난 이름을 가지게 되셨다고 하셨습니다.

신 28장 1~19절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 …”

순종의 결과물은 모든 것이 축복이요 불순종의 결과물은 모든 것이 저주라 하셨습니다. ‘심는 대로 거둔다’는 말씀처럼, 순종과 불순종의 결과는 이처럼 극명하게 달라집니다.

광야 생활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양한 어려움에 봉착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이 없으셔서 때로는 물도 없고 양식도 없는 길로 그들을 인도하셨을까요? 아닙니다.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하셨습니다(신 8장 1~2절). 믿음의 광야 길을 걸어가는 우리도 여러 가지 환경과 상황 속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의 길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을 시험해보셨듯 하나님께서는 우리 믿음도 순종 여부를 통해서 확인하고 계십니다.

하늘 아버지 어머니께서 시온의 자녀들을 구원하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그 가르침이 영생이요 천국 길임을 확신하고 순종으로 나아갑시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울수록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이 믿음과 순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도, 노아의 믿음도, 기드온, 여호수아의 믿음도 순종을 통해 측정하지 않으셨습니까? 우리의 믿음 지수를 순종으로 자꾸 높여가야 합니다. 지난 역사를 생각하며, 하나님의 선하신 가르침에 온전히 순종함으로써 모든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늘 아버지 어머니께서 기뻐하시고 하늘의 천사들과 영물들에게 자랑하실 만한 첫 열매로서 아브라함보다, 노아보다 더 큰 믿음을 갖고 서로 연합하고 화합하며 하늘 어머니께서 인도하시는 영원한 천국, 사랑의 나라에 넉넉히 나아가는 시온 자녀들이 되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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