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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sheep listen to my voice
구원 주신 하나님
2008-04-14 131728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고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영원의 시간 속으로 빠르게 달려가는 것 같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우리를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드리고 영광 돌리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자식을 낳아 기르는 부모의 수고를 정작 자녀들은 잘 알지 못합니다. 철부지 어린 시절에는 자신을 위해 부모가 얼마나 수고하고 희생하는지 깨닫지 못하고, 성장해서도 자기 혼자 자라난 듯 부모의 은공을 잊기 일쑤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낳으시고 천국으로 인도하시기까지 하늘 아버지 어머니께서 베풀어주신 사랑의 넓이와 깊이가 어떠한지 우리 자녀들로서는 가히 측량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우리 영혼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를 깨달아 늘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하늘 자녀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구원의 은혜, 그 넓이와 깊이

만약 홍수에 떠내려가는 우리를 혼신의 힘을 다해 구해준 이가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아무도 우리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죽어가는 우리를 바라만 보고 있을 때 자신의 위험은 조금도 생각지 않고 급한 물살을 가르고 다가와 우리를 건져준 이가 있다면 그 생명의 은인에게 어떤 마음을 품어야 하겠습니까?

혹은 이렇게 가정해봅시다. 불이 난 집 안에서 아이들이 연기에 질식하여 사경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구하러 들어가면 그 사람의 생명도 위태로울 상황이라 아무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불길 속에 뛰어들어가 필사의 노력 끝에 아이들을 구했습니다. 아이들은 무사했지만 정작 은인은 아이들을 구하고 뛰어내리다 다쳐서 수개월 입원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아무런 대가나 보상을 요구하지 않다 보니 아이들이 자라면서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결국 은인을 배신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우리가 만약 재판관이라면 이런 일에 어떤 판결을 내려야 하겠습니까? 생명의 은인에게 배은망덕한 행동을 한 사람이 있다면 모든 사람들에게 지탄 받고 중형을 받아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보다 더 큰 구원의 은혜를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 하신 말씀처럼(롬 6장 23절), 하늘에서 범죄하고 이 땅에 쫓겨 올 때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아무도 죄인들의 영혼에 관심을 갖지 않고 바라만 보던 상황에서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 안위를 염려하시고 우리를 살리시려 이 땅까지 오셨습니다.
육신의 짧은 생명을 살려주어도 그 생명의 은인에 대해 감격해하고 평생 그 은혜를 잊지 않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면, 영원히 죽을 우리를 영원히 살려주신 그 생명의 은인을 우리가 과연 배반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그것도 잠시 잠깐의 생명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영영한 지옥 불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자녀들을 살리시겠다는 일념으로 이 죄악 세상까지 오셨고, 친히 살을 찢고 피를 흘려 우리를 살려주셨습니다.
그러나 대다수 인생들은 그 은혜를 잊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찾지도 않습니다. 심지어 자녀 된 우리조차 “각자 제 길로” 갔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다”는 말씀처럼(사 53장 3~6절), 그 희생의 사랑을 온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유월절 새 언약의 참뜻

하나님의 사랑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 생명의 은인을 배반하고 그 사랑을 떠나가는 어리석은 자녀는 한 사람도 없어야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금 마음에 되새기며 우리 영혼을 영원한 사망 가운데서 건져주신 은인, 우리 하나님을 성경 속에서 다시 한번 만나봅시다.

요 6장 53~57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세상에 자기 살과 피를 희생하여 죄인을 살려내는 사랑을 가진 이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녀들을 살리시기 위해 당신 스스로 우리 대신 희생하실 담보물이 되어주셨습니다. 살을 찢으시고 피를 흘리셔서 그 살과 피를 먹여 영원한 사망 가운데서 우리를 건져내셨습니다. 이런 엄청난 대속의 은혜로 우리가 죄에서 해방되었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건져져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마 26장 17~19, 26~28절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가라사대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신대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하나님께서는 유월절에 떡을 주시며 ‘내 살’이라 하시고 포도주를 주시며 ‘내 피’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를 행하여 당신의 거룩한 희생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 하셨습니다(눅 22장 19~20절, 고전 11장 23~26절 참고).

단지 유월절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심으로써 영생 얻었다는 것으로 기뻐할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끝없이 우리를 긍휼의 눈으로 지켜보고 계시는, 보배로운 살과 피의 주인이신 아버지 어머니를 볼 수 있어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월절 어린양처럼 우리를 대신하여 희생이 되셨습니다. 당신의 살과 피를 자녀들에게 먹이신 희생의 결과로써 우리 자녀들을 전부 살리신 것입니다. 그 숭고한 사랑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사도들의 깨달음

사도 바울은 이런 그리스도의 사랑을 일찍이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을 직접 대면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다메섹 노상에서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진리를 영접한 후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살리기 위해 십자가의 고통까지 감당하셨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그 사랑과 은혜를 결코 저버리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로마서에 기록했습니다.

롬 8장 35~39절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하나님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이해했기에 사도 바울은 결단코 그 사랑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은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고 세상 영광도, 부귀도, 공명도, 학식도 모든 것을 다 배설물처럼 여겼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의 흔적을 자신도 가지고 다니며 형제들을 위해 수고하고 그리스도께서 부탁하신 복음 전파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갈 6장 14~17절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지노라”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 나를 살렸는지 깨달았기 때문에 바울은 자신도 이웃을 살리고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자기 몸을 조금도 귀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고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파선하여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내는 등 온갖 위험을 당하면서도 그리스도의 뜻을 받들어 복음을 전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 또한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구원하신 생명의 은인임을 깊이 이해하고 그 숭고하신 뜻을 끝까지 받들기로 결심했던 사도였습니다. 이적을 보고 따르던 5천의 무리가 다 떠났을 때 예수님께서 남은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 이것이 베드로의 대답이었습니다(요 6장 66~68절).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깨달음을 가졌던 베드로와 바울 같은 사도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면서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데 열정을 다 바쳤습니다. 그런 깨달음이 없으면 늘 신앙의 바깥 테두리에서 맴돌 뿐, 진정한 믿음을 갖지 못하고 신앙을 일개 장식물처럼 여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는 깊은 믿음 속에 거할 때라야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자녀들을 구원하러 두 번째 임하신 그리스도

영원한 생명의 은인이 되시는 우리 하늘 아버지 어머니께서는 자녀들을 구원하시고자 육체 장막을 쓰시고 이 땅에 두 번째 오셨습니다.

히 9장 27~28절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내버려두면 죽을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이 땅에 오신다 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 하나님께서 두 번째 이 땅에 오셔서 자녀들을 살리시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 25장 6~9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그 가리워진 면박과 열방의 그 덮인 휘장을 제하시며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 그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할 것이며”

오래 저장하였던, 사망을 멸하는 포도주는 그리스도께서 언약하신 유월절의 포도주를 의미합니다. 유월절 새 언약으로 우리 모두를 죄와 사망의 음침한 곳에서 건져 영생의 길로 인도하신 그분은 바로 우리 하나님이셨습니다.

생명의 유월절은 하나님의 살과 피를 우리에게 먹여주신 날입니다. 우리에게는 영생 얻는 기쁨의 날이었으나 우리 하늘 부모님께는 가장 큰 고난의 날이었습니다. 이런 하늘 아버지 어머니의 고통과 희생 속에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나음을 입었습니다.

우리가 유월절을 전하는 것은 유월절에 떡과 포도주를 먹는 예식만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유월절을 통해 우리 생명을 살리시기 위해 당신을 희생하신 하늘 부모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복음입니다.

계 22장 17절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성령과 신부께서 사망 가운데 있던 자들을 생명 가운데로 인도하시기 위해 마지막 성령시대에 나타나셨습니다. 생명을 주는 일은 크나큰 고통과 희생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한 영혼, 한 영혼이 살아나는 과정을 해산의 수고에 비하셨습니다. 사지의 온 뼈마디가 빠질 듯한 고통을 겪어야 한 생명을 탄생시킬 수 있듯, 영적 생명을 낳는 일도 희생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주신 것입니다.


감사와 영광과 존귀를 하나님께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신 성령과 신부의 아름다운 성덕을 세계 만방에 전파하고 만민들에게 알려야 하겠습니다. 결코 그 은혜를 잊거나 감사하지 못하고 원망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성경에서 찾아봅시다.

살전 5장 16~22절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성령을 소멸치 말며 예언을 멸시치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진실로 우리 생명의 은인 되신 하나님을 잊지 말고 범사에 감사하고 기뻐하며 늘 기도하는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하셨습니다. 생명의 은인이 이 땅에 오셨지만 세상은 그를 영접지 않았으며 감사치도 않고 오히려 대적하고 배반하였습니다. 이런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영혼 구원을 위해 묵묵히 해산의 고통을 감당하셨습니다. 단 한 번도 당신의 유익을 위해 우리에게 뭔가 요구하지 않으시고, 다만 성경의 가르침대로 올바르게 살라,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바다같이 넓은 마음으로 세상 모두를 포용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당신 자신보다 우리를 더 아끼시고 사랑하시며, 패역한 죄를 지은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의 질고도 마다하지 않으신 하늘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사람들이 가는 곳이 천국입니다. 그래서 하늘나라에서는 천군 천사들과 모든 영물들이 진정 어린 마음에서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계 4장 9~11절 “그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돌릴 때에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하나님의 숭고한 희생을 이 땅의 문자로 표현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희생이라는 단어 하나로 표현하지만 하늘에서 보니 그 희생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이렇듯 무한한 사랑으로 이루어진 영혼 구원의 대역사는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우주 영물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리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왜 그와 같이 복음에 충직했으며, 베드로가 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기까지 끝까지 그리스도의 길을 따랐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봅시다. 우리를 구원하신 성령과 신부의 은혜를 깨닫고 그 뜻을 받들어 모두가 선한 행실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 아름다운 복음의 소식을 부지런히 전파하여 많은 영혼을 구원하고, 영원한 천국에서 하나님께 축복 받는 시온의 형제자매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자족함을 배우라
솔로몬의 재판과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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