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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참된 희망을
 
들어가는 말
빗나간 선택
잘못된 희망
죽어가는 생명을 살...
절망에 빠진 영혼들...
들어가는 말
누구나 행복하고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기를 소망하지만 살면서 한 번쯤은 크고 작은 위기를 겪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인생에 찾아오는 위기나 시련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가시에 찔리지 않고서는 장미꽃을 모을 수 없다’는 필페이의 말처럼, 시련은 겪는 대상으로 하여금 보다 성숙한 인격체로 발전시키는 긍정적인 면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인들은 인생에서 찾아오는 위기를 가리켜 ‘삶을 더욱 알차고 견고하게 연단하는 불가결의 요소’라 표현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가시에 찔린 아픔을 참지 못하고 끝내 극단의 방법을 선택하는 이들이 늘고 있어 세인들의 안타까움이 커지고 있다.

빗나간 선택
최근 수개월 사이, 유명 연예인들과 정부 고위 관료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소식이 연이어 전해졌다. 각 분야에서 정상을 달리며 남부러울 게 없을 것 같은 삶을 누리던 이들의 갑작스런 비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과 공허함을 안겨주었다.

유명인들의 비극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 더욱 빈번해지면서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와 개인사로 치부되던 자살 문제가 본격적으로 수면 위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유명인들의 자살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는 데에는 ‘베르테르효과’가 한몫한다. ‘모방 자살’이라고도 알려진 이 현상은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필립스가 1974년 명명한 것으로, 독일의 문호 괴테가 쓴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소설은 남자 주인공 베르테르가 친구의 약혼녀인 로테를 열렬히 사모하다가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비관하며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다. 그런데 이 소설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후 유럽의 많은 젊은이들이 베르테르의 죽음을 모방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급증한 것이다. 올해 초 발표된 한 의학 논문에 따르면 유명인들의 자살 소식이 전해진 후 한 달 동안 자살한 사람이 많게는 400여 명이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굳이 베르테르효과를 논하지 않더라도 사회 전반에 만연한 자살 문제는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통계청이 2005년 밝힌 자료에 따르면 매년 자살하는 사람의 수가 교통사고 사망자의 수를 넘어섰다고 한다. 하루 평균 38명, 40분마다 1명이 자살을 ‘선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청소년 4천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50퍼센트 이상이 자살 충동을 경험했다고 하니, 의학기술의 눈부신 발전과 함께 생명 연장을 바라는 현대 사회에서 끔찍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잘못된 희망
누군가의 자녀이며 소중한 남편 혹은 아내이자 좋은 친구나 이웃인, 내 곁의 평범한 사람들. 행복하고 평화로운 삶을 바라 마지않는 그들이 왜 비극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대부분의 자살이 복합적인 상황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명확하게 원인을 규명하기는 어렵지만, 각기 다른 사연들 속에서도 자살을 선택한 사람들의 심정만큼은 한결같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스스로 주체할 수 없는 깊은 절망에 빠졌다는 것이다.

아무리 고통스러운 상황에 직면한다 하더라도 어둠 속에 비치는 한 줄기 빛처럼 일말의 희망을 발견한다면 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며 그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 그러나 극심한 고통으로 절망에 빠진 상태에서는 판단력이 흐려지고 무력감이 들어 이 어려움이 지속될 것이라는 막연한 염려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고 한다. 자신의 노력과 주변의 도움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홀로 고민하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는 것이다.

베르테르효과가 나타나는 궁극적인 이유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절망에 빠져 삶의 방향을 잃은 이들이 죽음에 대해 심각히 고민하다가 유명인의 죽음을 접한 후 현실을 더욱 비관하여 마침내 결단을 내리고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그래서 희망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그 어떤 위기나 시련보다 더욱 치명적이라 할 수 있다.

자살을 선택한 사람들이 가진 또 하나의 공통점은 ‘잘못된 희망’을 가졌다는 것이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죽음에는 공포와 두려움이 따른다. 자살 미수에 그친 이들은 죽음을 기다리면서 극심한 공포를 느꼈다고 한다. 또한 논란이 일었던 자살 사이트가 만들어진 배경에는 타인과 함께함으로써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덜어내고자 하는 안타까운 심정이 내포되어 있다. 그런데도 이들이 죽음을 선택하는 이유는, 사후에는 끔찍한 고통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편안해질 거라는 그릇된 희망을 품었기 때문이다.

혹자는 “스스로 죽는 것도 인간의 자유이자 권리”라는 주장과 함께 자살을 ‘자유로운 선택’, ‘삶의 아름다운 마침표’와 같은 말로 미화하기도 한다. 아우슈비츠수용소의 생존자로도 유명한 프랑스 학자 장 아메리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해방 행위,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이며 마지막 형태의 자유”라는 문장을 저서에 실어 논란을 낳은 바 있다.

그러나 인간의 삶이 자의에 의해 주어진 것이 아니듯 죽음 또한 결코 스스로 결정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굳이 경전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생사화복은 인간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관심과 격려
절망에 빠진 나머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베르테르. 누군가 그에게 고통의 이면에 감추어진 삶의 희망과 행복에 대해 알려주었더라면 그가 그토록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을까.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이들은 극심한 고통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한숨과 함께 내뱉는 “죽고 싶다”, “힘들다”는 말에는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도와주기를 바라는 처절한 울부짖음이 담겨 있다. 생사의 기로에서 다급하게 부르는 SOS 신호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자살을 고민하고 있는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관심과 격려라고 말한다. 이는 달리 말해, 사랑하는 이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로도 극단의 선택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복지정책이 발달된 미국의 경우, 고민을 상담하러 온 사람에게 일단 자살의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절대 혼자 집으로 돌려보내서는 안 되는 응급상황으로 간주한다. 만약 이런 사람을 아무런 조처 없이 돌려보냈다가 자살을 시도하면, 그의 상담원이나 치료자는 법적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 역시 정부의 주도 하에 10여 개의 관계부처가 참여해 자살종합대책을 마련 중이다. 자살이 단순한 개인적인 문제가 아닌 사회 문제로 대두된 현 시점에서 국가적인 차원에서 예방에 힘쓰겠다는 의도에서다. 꼭 법의 테두리가 아니고서라도, 내 주변에서 죽어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도와주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보이지 않는 상처가 더 아프다’는 옛말처럼 내 곁에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로 마음앓이 하고, 절망에 빠져 삶의 방향과 목적을 잃어버린 이들이 없는지 둘러보자. 그들에게 사랑과 관심으로 희망을 전해줄 따뜻한 손길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절망에 빠진 영혼들에게 참된 희망을
앞일에 대하여 어떤 기대를 가지고 간절히 바란다는 뜻을 가진 단어, ‘희망’. 희망은 현재의 고통과 어려움을 참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문제는 그 희망이 지극히 유동적이라는 데 있다. 저마다 다른 희망을 좇으며 살아가지만 너무 막연하거나, 아예 사라지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희망을 가리켜 ‘뜬구름’에 비유하기도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만약 그 빛깔이 영원히 퇴색되지 않고 오색찬란하게 우리의 삶을 비쳐주는 참된 희망이 있다면 그보다 더 가치 있고 소중한 것도 없을 것이다. 여기에 그러한 희망이 있다.

계 21장 1~4절 “ …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롬 8장 24절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하늘에서 지은 죄로 인해 이 땅에 살고 있는 인류에게는 어떤 형태로든 기쁨과 즐거움보다 고통과 시련이 더 많기 마련이다. 그 가운데서 영원한 행복이 이뤄지는 참된 희망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친히 이 땅까지 오셔서 새 언약을 세워주시고 인생의 모든 해답을 알려주셨다(마 9장 13절, 요 6장 53절, 눅 22장 19절). 그로 인해 우리는 참다운 희망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행 2장 25~28절 “ …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웠음이여 나로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이러므로 내 입술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는 희망에 거하나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으니 주의 앞에서 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나님께서 사랑과 희생으로 허락하신 천국과 영혼 구원의 희망이야말로 우리를 영원한 행복과 기쁨으로 이끄는, 인류에게 허락하신 최고의 축복이라 하겠다. 그리고 이러한 진정한 희망 안에 거하게 된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맡기신 부탁이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절망에 빠져 신음하는 영혼들에게 참된 희망을 전해주고 행복과 기쁨을 알려주는 것이다. 절망하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며 현실에 드리운 암울한 그림자가 짙어지는 지금, 변치 않을 새 언약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야말로 복음 전도자의 진정한 사명이 아니겠는가.

눅 10장 30~37절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이튿날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희망은 잠시 잠깐의 고통만을 잊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행복과 기쁨이 약속된, 최고의 축복이다. 삶의 가파른 언덕을 넘지 못해 위기에 처한 우리 이웃에게, 절망에 빠져 의욕을 잃고 방황하는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전해주신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보자. 희망을 전하는 그 발걸음이 상처받은 영혼들에게 잃어버린 행복을 찾아주고, 한 생명을 구원하는 가치 있는 행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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