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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 말은 만복의 근원입니다.
 
들어가는 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모든 죄악의 근원은...
사람을 아름답게 만...
좋은 말은 좋은 열매...
은혜로운 말은 한 영...
들어가는 말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말이 고우면 비지 사러 갔다가 두부 사 온다”, “말로 온 공을 다 갚는다”, “일 잘하는 아들 낳지 말고 말 잘하는 아들 낳아라”, “고기는 낚싯바늘로 잡고 사람은 말로써 잡는다”, “세계는 사람의 입술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친절한 말은 봄의 햇살처럼 따사롭다” ….

우리가 흔히 접하는 속담과 격언 가운데는 ‘말(言)’과 관련된 내용이 참 많다. 왜 이렇게 말에 관한 격언과 속담이 풍성한 것일까. 그것은 ‘말’이 수십 수백 번을 언급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보다 더 큰, 천국의 축복을 허락받은 사람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 천국을 약속받았던 우편 강도였다. 그는 살았을 때 죄인이었으나 죽음 직전 그리스도를 알아보고 그의 선하심을 인정했으며,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하소서”라는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한 마디로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일에 비유될 만큼 힘든 천국에 입성할 수 있는 큰 축복을 받았다.

반대로 말 한 마디 잘못해서 축복으로부터 멀어진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죽음에 내어주는 데 유력한 언행을 한 유대인들로 꼽힌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는 말은 물론 “우리 죄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소서”라는 패악한 말 한 마디로 인해 엄청난 비극을 초래했다.
말은 이처럼 한 사람의 생사뿐 아니라 민족의 운명을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

“이보게, 상길이”라고 불렀을 때와 “여보게, 박서방” 하고 불렀을 때 푸줏간에서 일하던 박상길이란 인물이 고기의 양에 차별을 두었다는 이야기도, 똑 같은 말이라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그 결과가 사뭇 달라진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이다.

칼로 받은 상처는 꿰매고 약을 발라 시간이 지나면 아물기도 하는 것이지만 말로 받은 상처는 그 어떤 수술로도 약으로도 치유되지 않고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는다. 언어를 무차별적으로 사용하게 되면 “언어 폭력”으로까지 인정되어 법적 처벌 대상이 되기도 한다.

작년에는 학창 시절 절친했던 친구의 말에 입은 상처로 사춘기를 방황하다 결국 인생을 풍요롭게 살지 못한 한 젊은 여자가, 학창 시절 말로써 상처를 준 친구를 찾아내어 목숨을 앗아간 비극적인 사건도 있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잠 18장 21절).”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정도를 벗어나서 사느냐 죽느냐 하는 생사를 좌우할 만큼의 중대사가 말 한 마디에 달려 있다면 칼보다 총보다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사용해야 하는 것이 바로 ‘말’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각인시켜 준다.

모든 죄악의 근원은 말에서 비롯된다
이 땅의 최초의 악이 말에서 비롯되었다는 점도 주지해 볼 일이다. 창세기에서 뱀은 거짓말로 하와를 꾀었고 하와의 말은 또 아담까지 범죄케 함으로써 온 인류에게 죽음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하나님께 죄악으로 비춰진 창세기의 바벨탑 사건 역시 언어 즉 말로 인해 빚어진 일이었다.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창 11장 3절)” 하며 탑을 쌓기 시작하여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창11장 6절)” 하시며 그 언어를 혼잡케 하시어 죄악을 짓지 못하시게 한 역사가 있다.

사람을 아름답게 만드는 ‘말’
아름다운 말, 좋은 말은 사람을 아름답게 만들기도 한다.
물은 좋은 음악이나 말을 들으면 아름다운 모양의 결정을 만든다고 한다.
한 과학자가 똑같은 성질의 물을 똑같은 그릇에 담은 다음 한쪽의 물에는 “좋아해, 사랑해”와 같은 좋은 말을, 또 다른 한 쪽의 물에는 “미워해, 싫어해, 증오해”와 같은 좋지 않은 말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물을 동시에 냉동실에 얼린 후 꺼내어 얼음이 된 물을 망치로 깼더니 좋은 말을 해주었던 물은 일정한 방향과 모양으로, 좋지 않은 말을 해 준 쪽의 물은 제 마음대로 깨어졌다고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좋은 말을 해주었을 때 사람은 행복해지고 기분이 좋아져 일에 능률도 생기고 할 수 없을 것 같던 일도 잘 해내게 된다. 반대로 좋지 않은 말을 들었을 때는 평상시 잘하던 일도 실수하고 실패하기 십상이다.

사람 몸의 70%가 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도 주지해 볼 일이다. 좋은 말을 들었을 때 아름다운 결정을 만든 물처럼 물의 성분이 대부분인 사람 또한 좋은 말을 들었을 때 몸도, 정신도, 영혼도 아름답게 변화되는 것은 아닐까.

좋은 말은 좋은 열매를 맺게 한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다. 어떤 말이든 그 말로 인해 결과의 좋고 나쁨이 결정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자녀들을 교육할 때 늘 험한 말이나 부정적인 말보다 좋고 긍정적인 말을 자주 하라고 충고했다. 심지어 코를 풀 때도 “흥(興)” 하라고 주문을 했다고 하니 말을 중요시하는 선인들의 깊은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말이 씨가 된다는 것은 “콩 나는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고 한 말처럼 좋은 말은 좋은 씨앗이 되어 좋은 열매를, 나쁜 말은 나쁜 씨가 되어 나쁜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성경 가운데에서 우리는 말로 인해 큰 축복을 받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바로 갈렙과 여호수아가 그 대표적 인물들이다.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믿음이 없는 말로 하나님을 원망하고 자신들의 처지를 비관하는 말을 해 결국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광야에서 멸망 받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만은 믿음이 있는 선한 말과 결연한 의지가 가득한 말을 함으로써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민 14장 28절)” 하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받는 엄청난 축복을 받았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마 12장 36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 12장 37절)” 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항상 사람의 말로써 그를 판단하고 축복과 정죄를 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이다.

은혜로운 말은 한 영혼을 살린다
하나님께서는 말씀 한 마디로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셨다.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이 친히 육신이 되어 임하셔서 당신의 말씀을 전하기까지 하셨다.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면 말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는 새삼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말의 위력이 죽고 사는 문제 즉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문제라면 함부로 말을 사용해서는 결단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용서 받지 못할 죄를 지은 죄인들로 온전한 의인으로 거듭나야만 천국에 입성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말에 실수가 없는 자가 온전한 사람”이라고 하셨다(약 3장 2절). 또한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 4장 29절)”,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눅 6장 45절)” 하시며 거듭거듭 선한 말, 은혜로운 말로 온전한 하늘 사람으로 거듭나기를 강조하고 계신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마 12장 34절).”

하나님의 자녀라 한다면 악한 말이 아닌 선한 말과 선한 행실이 우선 되어야 할 것이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말은 생명나무와 같다고 했다. 또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라(벧전 3장 10절)”고도 하셨다.
우리는 아름다운 말, 선한 말, 은혜로운 말로 식구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고 한 영혼을 능히 살리며 좋은 날을 볼 수 있는 지혜로운 자녀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께서 바라고 원하시는 것인 동시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임을 가슴 깊이 새겨두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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