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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의 힘을 이기는 자
 
들어가는 말
상황이 가진 힘
진리의 횃불로 흑암...
상황을 이기는 자 되...
들어가는 말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요!’라고 할 수 있는, 모두가 ‘아니요’라고 할 때 ‘예!’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친구가 좋다. Yes(예)도 No(아니요)도 소신 있게!”

몇 해 전, TV에 방영되었던 모 기업의 광고 문구다. 이 회사는 주변 상황에 휩쓸리지 않고 소신껏 기업을 운영해 나가겠다는 경영 방침을 이같이 보여주면서 좋은 반응을 얻어냈다. 하지만, 현실에서 다수 의견에 반하여 자신의 소신을 꿋꿋이 지켜나가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누구도 쉽사리 거스를 수 없는 ‘상황의 힘’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상황이 가진 힘
2003년 2월 18일, 약 200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구 지하철 화재 사건은 전 국민에게 충격과 탄식을 안겨준 대형 참사였다. 그런데 사고 후 화재의 원인과 과정을 조사하던 중 이해하기 어려운 사실이 드러났다. 불이 날 당시 일부 객차의 승객들이 차 안으로 연기가 뿌옇게 스며들어 매캐한 냄새가 나는데도 대피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다가 참변을 당한 것이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얼마 전, 이 문제와 관련된 흥미로운 실험이 펼쳐졌다. 대학생 일곱 명을 실험 대상으로 삼아, 진행자가 어린아이도 맞출 만한 간단한 질문을 던지면 앞선 여섯 명이 차례대로 틀린 답을 말한다. 이 실험은 주위 상황에 반응하는 인간의 행동 양상을 알아보기 위한 것으로, 사실 오답을 말한 여섯 명은 연기자들이고 마지막 한 사람만이 진짜 실험 대상자였다.

마지막 사람은 가짜 실험 대상자들의 오답을 들으며 처음에는 어이없어하더니 차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마침내 자신의 차례가 되자 다른 사람들과 같은 오답을 말하는 것이다. 대상자를 바꾸어 여러 번 실험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실험 대상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 앞선 사람들을 따라 틀린 답을 말했다.

실험이 끝난 후, 실험 대상자들은 정답을 뻔히 알면서도 앞선 사람들을 따라 오답을 말한 것에 대해 “주위에서 나를 이상하게 볼까 봐!”, “왠지 많은 사람이 주장하는 게 맞을 것 같아서”, “혼자만 튀는 게 싫어서” 등의 이유를 들었다. 심리학자들은 이 같은 실험 대상자들의 반응을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그 사람들에게 포함되려고 하는 인간의 강력한 욕구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구 지하철 화재 사건 당시, 지하철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신속히 대피하지 않았던 이유도 이러한 실험의 결과로 이해해 볼 수 있다. 주위 사람들이 대피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으니 혼자 일어서면 이상해 보일까 봐 눈치를 살피다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놓치고 만 것이다.

‘나라면 그러지 않을 텐데’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내의 한 심리학 교수는 이러한 반응에 대해 “오만한 생각”이라고 표현했다. 상황 밖에서야 얼마든지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지만 일단 그 안에 있으면 누구나 상황의 힘에 지배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만큼 상황이 가진 힘은 생각 이상으로 강하다. 때로는 이 거대한 힘이 절대 권력을 휘두르기도 한다.

진리의 횃불로 흑암을 깨트리다
올해로 프랑스 종교개혁가 장 칼뱅(Jean Calvin, 1509~1564)의 탄생 500주년을 맞아 그의 업적을 기리는 다양한 행사가 세계 곳곳에서 개최되었다.

종교개혁은 16세기경 가톨릭의 부패와 타락에 맞서 신앙의 개혁을 이루어 낸, 기독교 역사의 기념비적인 사건이다. 중세 교회는 2세기경, 이방 종교의 전통과 관습을 받아들이면서부터 타락하기 시작하여 점차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새 언약의 복음이 변질하거나 사라져버렸다. 그렇다 보니 성직자들의 온갖 세속적이고 비도덕적인 행태가 교황청의 권위 아래 버젓이 자행되었다. 심지어 교황 율리우스 2세는 베드로 성당 신축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고자 신도들에게 일정한 금액을 받고 면죄부(죄를 면하게 해주는 증서)를 발행하여, 구원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이념을 퍼트리기도 했다.

이 상황에서 교황청에 의해 법적으로 금지되어 성경을 읽을 수 없었던 평신도들은 말할 것도 없고, 성경을 거스르는 불의한 행태를 보며 개탄한 성직자들조차 가톨릭 교회의 절대 권력에 순응하는 것이 일반이었다. 더구나 대다수가 상황에 적응하며 권력 나눠 갖기에 혈안이 되어 구원은 철저히 뒷전이 되고 말았으니, ‘종교암흑시기’라 칭할 만큼 암울한 시대였던 것이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마르틴 루터다. 로마에서 열린 수도원 총회에 참석했다가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한 그는 교회의 부패와 비성경적인 교리를 고발하는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발표하면서 교황청의 절대 권력에 반기를 들었다. 진실한 성도들의 정신을 일깨운 이 반박문은 종교개혁의 불길을 일으키는 불쏘시개가 되었고 이후 츠빙글리, 칼뱅 같은 개혁가들이 일어나면서 개혁의 불은 삽시간에 전 유럽으로 번져갔다.

이 모든 역사가 하나님의 예언 가운데 이루어진 일이지만, 교황청이 교회 내에서뿐 아니라 정치적인 영향력까지 행사하며 불가침의 권력을 휘두르던 당시, 그 막강한 상황의 힘과 맞서 담대하게 개혁을 외친 이들의 용기는 분명히 박수를 받을 만하다.

어느 시대에든 상황의 힘을 거스르는 행위는 고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주위의 따가운 시선이나 압력도 그렇거니와 소신을 밝힌 순간부터 감내해야 할 시련들은 차라리 눈을 질끈 감고 시류에 편승하는 쪽을 택하고 싶을 만큼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종교개혁가들이 죽음까지 불사하며 가톨릭에 맞섰던 것은 바로 신념 때문이었다. 교회가 성경 말씀, 즉 하나님의 뜻과 다른 길을 가는 것을 보고도 묵인하면 그것에 동조하는 셈이 되어(시 14편 3절) 결국 구원을 포기하겠다는 선언과도 같기에, 아무리 상황의 힘이 강하다 해도 개혁의 신념을 결코 굽힐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신념과 용기에도 영적 흑암이 완전히 걷히지는 못했다. 신앙의 자유와 믿음의 개혁은 이뤘으나 여전히 사람의 계명과 거짓 교리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 없는 일요일 예배가 교회의 정통 교리가 되고, 이교도들의 동지 제일이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둔갑해 기념되는 등 거짓이 진리인 양 사회 전반에 만연하여 또 다른 상황의 힘을 과시하는 것이다.

사 5장 20절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

이 같은 흑암을 완전히 깨트리고 하늘 자녀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셨다.

히 9장 28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성령시대 구원자로 임하셔서 거짓된 상황에 길들여 있는 영혼들을 일깨우시려 새 언약 진리의 빛을 전파하신 하늘 아버지. 그러나 아버지께서 희생으로 세워주신 새 언약의 가치를 깨닫지 못한 채 ‘이제껏 알고 있던 상식과 달라서’, ‘주위에서 이상하게 볼까 봐’,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이 진리일 것 같아서’ 등의 이유로 상황의 힘에 갇혀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안타까운 영혼들이 많다.

하지만, 아무리 다수의 사람이 따른다 해도 거짓은 거짓일 뿐, 결코 참이 될 수 없다. 거짓된 상황에 순응하면 당장은 편할지 몰라도 결코 구원받을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오직 성경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자들만이 거짓을 강요하는 상황의 힘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

마 7장 13~14절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상황을 이기는 자 되라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도 상황의 힘과 맞닥뜨리게 되는 경우가 있다. 진리를 알지 못하는 다수에 의해 새 언약의 복음이 이단의 가르침 취급을 받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은 말씀을 전할 분위기가 아니야’,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가 나를 이상하게 보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주저하고 망설이다가는 한 영혼을 구원할 소중한 기회를 놓쳐버리게 된다.

하나님의 예언대로 복음이 신속히 이루어지는 이 시대야말로 어떠한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반석과 같은 신념이 필요한 때다. 혹여 다수 의견을 등에 업은 상황의 힘이 우리에게 거짓과 타협할 것을 강요한다 할지라도 떨치고 일어나 담대히 진리를 전파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세상의 흑암을 깨트리신 하늘 아버지의 자녀다운 모습이라 하겠다.
이 시대 하늘 어머니의 자녀로서 우리가 반드시 이겨내야 할 또 다른 상황의 힘이 있다.

딤후 3장 1~5절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마 24장 10~12절 “그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오늘날 세상은 도덕과 윤리가 무너지고 불법이 만연하여 많은 이들이 자신의 욕심과 일시적인 쾌락을 좇아 살아가고 있다. 이런 상황이 당연시되다 보니 양심과 도덕을 내세우던 사람도 어느새 시류에 젖어 불의와 타협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같은 모습에서 돌아서라고 단호히 말씀하셨다. 온 세상이 이러한 상황의 힘에 이끌려 간다 해도 하늘 자녀만큼은 하나님의 가르침대로 경건한 믿음의 길을 걸어가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할 만한 충분한 힘을 주셨다. 바로 ‘어머니 교훈’이다. 주는 사랑, 아름답게 보는 마음, 양보와 희생…. 어머니께서 알려주시고 본 보여주신 교훈은 사랑이 식고 불의가 지혜로, 정의가 어리석음으로 비치는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올바른 길을 걸으며 참된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견고한 하늘 소망 안에서 어머니께서 주신 사랑의 힘으로 화합하는 가운데 우리 앞을 가로막는 모든 상황을 이겨내고 담대히 진리를 전파하자.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결단코 현실에 굴하지 않고 주어진 상황을 당차게 이기는 자들만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비하신 천국 열쇠를 허락받게 될 것이다.

롬 12장 2절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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