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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독립의 원동력, 시오니즘
 
들어가는 말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지난하게 이어진 설...
시오니즘 그리고 시...
이스라엘의 독립, 이...
들어가는 말
오늘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국토 면적은 한국의 1/5에 불과하지만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지구촌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나라인 동시에, 무수한 종교인들이 성지(聖地)로 여기는 곳이다. 그러나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성경과 역사에만 기록되어 있을 뿐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나라였다.

A.D. 70년 로마에 의해 멸망한 이스라엘이 다시 세워진 때는 1948년이다. 한 번 사라진 나라가 2천 년에 가까운 세월을 뛰어넘어 다시 세워진 것은 세계사에서 전무한 일이다.
많은 역사가들이 이스라엘의 독립을 ‘기적’이라 말하는 이유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이스라엘
A.D. 70년, 6만 대군을 이끌고 온 로마 장군 티투스가 스코푸스 산에서 바라본 예루살렘은 ‘동방에서 가장 축복받은 도시’였다. 비록 긴 세월 로마제국의 지배하에 놓여 있었다 해도 예루살렘은 여전히 찬란한 역사와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밖에서 보는 풍경과 달리 예루살렘 내부는 생지옥과 다름없었다. 로마 군대에 포위되기 전까지 예루살렘은 3개의 유대인 군벌에 의해 분열된 채 내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각 군벌 지도자들은 자신이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에서 구하겠다며 서로 경쟁했다. 로마대군의 움직임에 군벌 지도자들이 내분을 중단하고 2만 1천 명의 전사들을 집결해 대항하기로 합의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로마 군대는 예루살렘의 수원(水源)인 기혼 샘의 물길을 차단하고 식량 보급로를 완전히 끊었다. 예루살렘이 수개월간 봉쇄되자 성내 민중들은 극심한 굶주림에 시달렸다. 허리띠, 장화, 방패에 달린 가죽을 떼어내 씹어대고, 짐승들조차 건드리지 않는 쓰레기를 뒤져 먹었다.

전염병이 돌고 사망자가 속출하면서 수습되지 못한 시신이 거리에 나뒹굴었다. 굶주림을 견디지 못한 이들이 목숨을 건 탈출을 시도했지만 대부분 로마 군인들에게 붙잡혀 십자가에 못 박혔다. 예루살렘 성밖 감람산 위에서 매일 500명에 달하는 유대인이 십자가에 달렸다고 전해진다.

몇 달간의 봉쇄 끝에 로마 군대가 성벽을 무너뜨리자 곧이어 대량 학살이 벌어졌다. 유대인들은 결사항전을 벌였지만 수개월 동안 굶주리다시피 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거리마다 남녀노소의 시신이 쌓였고 핏물이 강처럼 흘렀다. 마을들은 화염에 휩싸인 채 무너졌다. 유대인들의 정신적 지주인 성전은 오늘날 ‘통곡의 벽’으로 알려진 서쪽 벽만 남긴 채 철저히 불타고 파괴되었다.

110만 명이 목숨을 잃은 가운데 운 좋게 살아남은 자들도 비극을 피하지 못했다. 군사들은 끝내 죽임을 당했고 건장한 자들은 이집트 광산의 노역자로 보내졌다. 상당수는 말 한 마리 값도 안되는 돈에 노예로 팔려갔으며 죽을 때까지 사자와 싸우도록 선택된 자들은 원형경기장이나 개선식에 전시되었다.

예루살렘 함락 과정을 현장에서 생생히 지켜본 역사가 요세푸스는 증언했다. “예루살렘은 이렇게 종말을 맞이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웅장한 위용으로 모든 인류 가운데 우뚝선 명성을 갖게 되었을 한 도시가…”라고.


지난하게 이어진 설움의 역사
예루살렘은 더 이상 유대인들의 땅이 아니었다. 로마 제10군단의 사령부가 주둔하고 시리아인과 그리스인들이 일부 거주하면서 유대인의 오랜 성지는 이방인의 도시로 전락했다.

영토 없는 나라는 존재할 수 없으며 나라 없는 민족은 소멸하기 쉽다. 살아남은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주변에서 로마에 저항했지만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는커녕 민족의 생존조차 장담할 수 없었다. 로마는 유대 반란군을 체계적으로 제거하는 한편 유대인들에게 과중한 세금을 부여해 그들이 발붙일 곳을 점점 줄여나갔다.

유대인들의 흔적을 아예 지우고 싶었던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는 예루살렘을 이교의 신 유피테르(제우스)를 기념해 ‘아엘리아 카피톨리나’로 개칭하고 유대인들이 접근할 경우 사형으로 처벌했다. 유대 지역은 유대인들의 오랜 적 ‘필리스틴(블레셋)’의 이름을 딴 팔레스티나로 지명이 바뀌었다.

이스라엘 독립 직전까지, 로마제국에 이어 비잔틴제국, 아랍의 여러 왕조 및 오스만제국, 영국 등 다양한 이방 민족과 나라들이 예루살렘을 통치했다. 지리적,종교적,경제적 가치가 높았던 예루살렘은, 끊이지 않는 분쟁으로 힘없는 유대인들에게 나라를 되찾을 틈을 주지 않았다. 특히 7세기 초 이슬람교가 창시된 뒤 예루살렘이 모슬렘의 성지로 여겨지면서 십자군 전쟁이 일어나는 등 분쟁은 더욱 격렬해졌다.

가톨릭 국가들에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 박은 민족’으로 낙인 찍힌 유대인들은 유럽을 비롯한 세계 각지로 뿔뿔이 흩어져 살며 온갖 차별과 멸시, 박해에 시달렸다. 공동체를 형성해도 자치권을 보장받을 수 없었을 뿐더러 시간이 지나면서 각국에는 유대인 차별조항까지 생겨났다. 십자군 전쟁 중에는 예루살렘으로 향하던 유럽 군사들이 툭하면 유대인 마을을 약탈하고 주민들을 학살했다. 분하고 억울해도 유대인들은 법의 보호를 기대하기 어려웠고, 본토인들이 추방하면 그곳을 떠나는 수밖에 없었다.

유대인들은 상업으로 생계를 이어갔으나 십자군 전쟁에서 큰 돈을 벌어들인 본토 상인들이 실권을 장악하면서 시장에서 점차 밀려났다. 유대인들의 최후 선택은 금융 분야였다. 왕족, 귀족, 상인 등 다양한 계층을 상대로 자금을 대출해주었는데 위험 부담이 컸기 때문에 이자는 매우 비쌌고, 그만큼 유대인들을 향한 미움은 더 커졌다. 당시 유대인에 대한 시선이 어떠했는지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악덕 고리 대금업자가 유대인으로 묘사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유럽인들은 유대인들을 아예 악마로 취급하기도 했다. 유대인들이 우물에 독을 타서 흑사병이 발생했다거나 사람의 피로 제사를 지낸다는 둥 갖가지 소문을 퍼뜨렸고, 1215년 교황 이노센트 3세는 유대인을 유럽인들과 구별하기 위해 옷에 황색 표지를 부착하게 했다. 벽으로 둘러싼 유대인 격리구역 ‘게토’가 처음 등장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시오니즘 그리고 시오니스트
위협과 폭력, 추방이 집요하리만치 이어졌음에도 유대인들은 무려 1900년 동안 생존했다. 그들의 소원이 나라를 되찾아 억압에서 해방되는 것이었음은 물론이다. 독립을 염원하며 전전긍긍 살아가던 유대인들이 마침내 꿈을 이룰 수 있었던 원동력은 ‘시오니즘’(Zionism)이었다. 시오니즘이란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 유대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한 민족주의 운동이다.

시오니즘이 촉발된 직접적인 원인은 위기였다. 유대인의 역사 자체가 위험의 연속이었지만 18세기 유럽은 ‘가장 오래된 증오’라는 이름의 1반유대주의가 최고조에 달하던 시기였다. ‘유대인에 의한 육체적,정신적 오염으로부터 유럽 문명을 지켜내야 한다’는 이론이 유럽 전역에 퍼졌고, 반유대주의를 부추기는 책이 잇따라 출간됐다. 반유대주의를 위한 국제회의가 독일 드레스덴에서 처음 열린 데 이어 유럽 각지에서 반유대 시위가 일어나면서 유대인에 대한 살인, 방화, 약탈이 더욱 심해졌다.

외부적인 박해도 문제였지만 더 큰 위기는 내부에 있었다. 유대인 철학자 모제스 멘델스존이 유럽인들과의 동화와 융합을 촉구하는 ‘하스칼라(Haskalah)’ 운동을 주창하자 유대인 지식층의 상당수가 민족의 전통을 포기하고 유럽 문화를 받아들였다. 유대인 공동체는 힘을 잃었고 개개인의 역사 의식은 옅어졌다. 질곡의 세월을 거치는 동안 결코 꺾이지 않았던 민족의 근간이 흔들린 것이다.

하스칼라를 거부한 일부 유대인들은 전통을 지키고, 나아가 조상들의 나라를 되찾기 위해 시오니즘을 전개했다. 1894년 발생한 ‘드레퓌스 사건’은 시오니즘에 본격적으로 불을 당겼다. 그 중심에 유대인 저널리스트 테오도르 헤르츨이 있다. 드레퓌스 사건을 바라보며 헤르츨은 ‘유대인 문제는 유대인이 독자적인 국가를 창설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시오니즘에 뛰어들었다. 1896년 시오니즘의 개념을 정의한 저서 ‘유대 국가’를 발표한 그는 이듬해 열린 제1차 시오니스트회의를 시작으로 시오니즘을 전 유럽으로 확대시켰고, 이후 수많은 시오니스트(유대 운동가)들이 등장해 힘을 보탰다.

시오니스트들의 활약으로 시오니즘은 유럽 사회의 관심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 나라를 세우는 것은 여전히 불가능에 가까웠다. 유럽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대거 이주해야 국가의 기반을 다질 수 있는데, 하스칼라 지지자들의 회의적인 여론은 물론이고 팔레스타인의 황무지 같은 환경이 큰 걸림돌이었다. 각고의 노력으로 다져놓은 기반을 한순간에 포기하고 황무지로 향할 사람은 많지 않았다. 조금만 더 견디면 상황이 나아질지도 모른다는 것이 다수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불안한 국제 정세와 맞물려 반유대주의는 오히려 더 격렬해졌다. 동유럽에서는 수천 명의 유대인이 처형됐고, 제정러시아에서도 그동안 자행되던 무차별적 유대인 학살이 더욱 심해졌다. 어느 때보다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자신들의 나라 없이는 결코 안전할 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은 유대인들은 하나둘 시오니스트들의 의견에 동조하고 팔레스타인 행을 택했다. 이주민은 갈수록 늘어 1925년 팔레스타인 내 유대인이 10만 명을 넘어선 데 이어 1933년에는 23만 명에 달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유럽을 떠나지 못한 유대인들은 유대인에 적대적이던 나치 정권의 등장 이후 유례 없는 비극을 맞았다. 나치 정권은 유럽에서 모든 유대인을 제거한다는 계획아래 유대인들을 각지에 세운 수용소로 끌고 가 학살했다. 1945년 1월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폐쇄될 때까지 유럽 전역에서 인종 청소라는 명목으로 유대인 600만 명이 학살당했다.

홀로코스트를 겪으며 다시 한번 국가 건설의 필요성을 절감한 세계 각지의 유대인 지도자들은 국가 수립을 위해 필요한 요소를 착실히 준비해나갔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유대 국가 건설 계획은 더욱 탄력을 받았다. 하지만 이를 저지하려는 주변국들의 반대 움직임도 만만치 않았다. 유엔은 유대인들과 중동 국가들을 중재하려 했지만 실패했고, 주변국들은 팔레스타인 내 유대인 거주 지역에 대규모 공격을 퍼부었다. 공격이 진행되는 동안 유대인 1200명이 사망하고 주요 길목이 차단됐다.

공세가 계속됐지만 유대인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르는 기회를 놓칠 수 없었던 그들은 목숨을 걸고 전장으로 뛰어들었고, 마침내 1900여 년 만에 나라를 되찾았다. 1948년 5월 14일 오후 4시, 텔아비브 박물관에서 이스라엘 초대 수상 벤구리온은 전 세계를 향해 독립을 선포했다.

“우리는 유대인의 자연적이며 역사적인 권리와 유엔의 결의안에 따라 이 자리에서 이
스라엘이라 알려질 유대 국가의 성립을 선포한다!”


이스라엘의 독립, 이면적 유대인의 길
이스라엘의 독립은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과 유다의 포로를 돌이킬 때가 이르리니 내가 그들을 그 열조에게 준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라 그들이 그것을 차지하리라”(렘 30장 3~8절)는 성경 예언의 성취였다. 하지만 그 예언이 이뤄지기까지 수많은 유대인들이 피와 땀, 눈물을 흘렸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유대인들이 독립을 얻기까지의 과정은 ‘이면적 유대인’(롬 2장 29절)인 하나님의 성도들이 ‘잃어버린 나라’ 천국을 다시 얻기 위해 걷는 길과 흡사하다. 유대인들이 온갖 고난 속에도 독립 의지를 지킨 끝에 소원을 이뤘듯, 천국 소망을 끝까지 잃지 않을 때 성도들은 하늘나라를 되찾을 수 있다.

천국 소망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영적 시오니스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영의 본향 하늘나라를 잊은 채 세속에 물들어 살아가는 하늘 백성들을 일깨워 시대를 분별하게 하고, 천국을 향해 나아가도록 돕는 것이 영적 시오니스트가 해야 할 일이다. 이를 위해 그리스도로 임하신 예수님은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영적 시오니즘을 본 보이셨다.

눅 4장 18~19절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막 1장 14~15절 “…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제 나라가 아닌 남의 땅에서 살아가는 민족의 설움은 클 수밖에 없다. 이 땅에서 참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데 때때로 고난이 따르지만 그 길의 끝에는 세상 영광에 비할 수 없는 하늘의 축복이 기다리고 있다. 시오니스트들이 시오니즘을 통해 수많은 유대인들을 일깨우고 함께 본향으로 돌아간 것처럼, 우리도 천국 복음으로 하늘 백성들을 다 찾을 때 영원한 천국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 과정을 이스라엘의 기나긴 역사가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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