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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며 가시밭길을 꽃길처럼
 
들어가는 말
바리새파의 사울에서...
박해 속에 이어진 여...
고난을 축복의 기회...
영원한 천국, 잠깐의...
들어가는 말
이스라엘의 울타리를 넘어 복음을 세계로 전파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 사도 바울.
오늘날의 시리아, 터키, 키프로스, 마케도니아, 그리스에 이어 당시 세계의 중심이던 로마까지, 아시아와 유럽 곳곳을 누비며 거침없이 복음을 전파한 그는 교회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하늘에서 영원히 빛날 영예와 축복을 얻기까지 바울은 어떤 길을 걸었을까? 세계 복음의 사명을 이루어가는 이 시대 엘로히스트들에게 교훈이 될 그의 생애를, 사도행전의 기록을 통해 따라가본다.



바리새파의 사울에서 그리스도교의 바울로
스데반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던진 돌에 맞아 순교할 때, 그 곁에서 돌로 치는 자들의 옷을 맡고 있던 청년이 있었다. 다소(터키 중남부 타르수스) 출신의 바리새파 유대인으로, 소년 시절 예루살렘에서 당대 최고 율법 학자 가말리엘을 사사한 사울이다.
‘나사렛 예수의 추종자’들을 색출하는 데 힘썼던 사울은, 박해를 피해 예루살렘에서 도망친 그리스도인들을 잡아들이려 대제사장의 승인을 받고 다메섹(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으로 향하던 중 일생일대의 사건과 맞닥뜨린다. 갑자기 하늘에서 내려온 빛에 둘러싸여 땅에 엎드러진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이 들린 것.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이때 눈이 먼 사울은 사흘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있다가, 환상 중에 예수님의 명을 받고 다메섹에서 달려온 아나니아와 만난 뒤 비로소 시력을 되찾는다. 즉시 아나니아에게 침례를 받고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새 삶을 시작한 사울은 이후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데 앞장서며 사울 대신 로마식 이름인 바울로 불린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사도로서의 삶, 자신이 그토록 증오했던 나사렛 예수를 따르는 길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는 스데반의 죽음을 지켜본 바울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았다. 게다가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전, 그에게 예정되어 있던 미래는 유대교 지도자로서 사회에서 존경받고 덕망을 쌓을 수 있는 탄탄대로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영접한 구원자를 온 세계에 전파하기 위해, 일평생 쌓은 지식과 대대로 이어온 철저한 바리새파로서의 자부심, 삶의 일부였던 유대교도로서의 사고방식과 습관을 모두 배설물로 여기고 내버렸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 2장 20절) 한 훗날의 고백은 단지 말치레가 아니었다.


박해 속에 이어진 여정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과정이 극적이었던 만큼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의 회심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리스도인들보다 더 충격받은 이들은 유대교인들이었다. 바울이 누구보다 열심이던 유대교도였기 때문에 그들이 느낀 배신감과 분노는 더욱 컸을 터였다.
유대인들은 틈만 나면 바울을 위기에 빠뜨렸다. 다메섹에서 복음을 전하는 바울을 죽이기 위해 모의했고, 이를 눈치챈 그리스도인들이 바울을 광주리에 태우고 성 밖으로 달아 내려 예루살렘으로 보내자 그곳에서도 그를 해하려 했다. 바울은 고향 다소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바울이 복음의 뜻을 접은 것은 아니었다. 사방에서 자신의 목숨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음을 알면서도 다시 행동에 나섰다.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피해 다른 지역에 정착한 뒤 복음이 이방에 전해지면서 말씀 듣기를 바라는 이들이 곳곳에 많았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 중 한 사람인 바나바와 함께 수리아 안디옥(터키 남동부 안타키아)으로 가서 구원자를 증거하며 성도들을 돌보던 그는 바나바의 고향 구브로(지중해 동부 키프로스) 섬으로 향했다. 항구 도시 살라미(키프로스 동부 살라미스)에 이어 바보(키프로스 남서부 파포스)에서 복음을 전하는 동안 총독 서기오 바울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도 했다.
구브로를 떠나 버가(터키 남서부 페르게)를 거쳐 당도한 비시디아 안디옥에서는 온 성이 성경말씀을 듣고자 바울 일행에게 몰려오면서 복음이 그 지방에 두루 퍼졌다. 바울을 눈엣가시처럼 여겼던 유대교인들이 들고 일어선 것은 당연지사. 그들은 성내 귀부인과 유력자들을 선동해 바울 일행을 기어이 쫓아내버렸다.
바울은 낙담하지 않고 이고니온(터키 중부 코니아)으로 향했다. 이고니온에서도 허다한 무리가 복음을 듣고 믿었지만 강경한 유대인과 관원들이 사도들을 돌로 치려고 달려들면서 일행은 또다시 쫓기듯 도시를 떠나게 된다.
갈라디아 남부의 루스드라에 도착한 바울은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쫓아온 유대인들의 돌에 맞고 초주검이 되어 성 밖으로 내쳐지고 만다. 하지만 그는 담담히 자리를 털고 일어나 더베로 향한다. 노고는 헛되지 않았다. 그곳에서 변함없이 사명에 힘쓰는 동안, 수많은 이들이 복음을 받아들인 것이다.
수리아 안디옥에서 더베까지 험난한 여정을 헤쳐오는 동안 죽을 고비만 수차례 넘기며 지치고 질렸을 법도 하지만 바울은 여기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고난을 축복의 기회로
끊임없는 박해 속에 바울이 힘겹게 뿌려놓은 복음의 씨앗은 싹을 틔우고 결실해,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들은 갈수록 늘어났다.
더베를 끝으로 다시 수리아 안디옥으로 돌아가는 길, 바울은 타우러스 산맥을 넘어 다소를 거치는 가깝고 쉬운 경로를 두고 루스드라, 이고니온, 비시디아 안디옥 등 지금껏 거쳐온 도시들을 다시 지나가는 멀고 복잡한 길을 택한다.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길을 굳이 택한 것은 제자들을 세우고 교회를 부탁하기 위해서였다(행 14장 22~23절).
먼 길을 돌아 수리아 안디옥에 돌아온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달려가 시급한 문제를 논의하고 안디옥에서 복음에 힘쓰다가 또다시 길을 나선다. 구브로 섬과 소아시아 남부에 세워진 교회들을 돌아보고, 아직 가보지 못한 곳에서 더 많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함이었다. 이번에는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 중 하나인 실라와 동행했다.
루스드라, 브루기아 등지를 돌아보며 교회를 견고하게 한 바울 일행은 비두니아로 가려고 애쓰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므로 가지 못하고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에 이른다. 그곳에서 환상 중에 “마게도냐(유럽 남부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마게도냐 사람의 요청을 듣고는 곧장 방향을 틀어 그곳으로 향한다. 아시아를 넘어 본격적인 유럽 선교의 시작이었다.
마게도냐의 첫 성인 빌립보에서 바울 일행은 두아디라 성 출신의 자주색 옷감 장사인 루디아의 가족을 인도하고 여종에게 들린 귀신을 쫓아내기도 하는 등 뜻깊은 행보를 이어간다. 이에 반대자들은 육체적 핍박에 그치지 않고 더한 술수를 동원해 그들을 괴롭혔다. 일행을 고소해 곤란에 빠뜨린 것이다.
바울 일행은 억울하게 매를 맞고 투옥되었지만 이는 오히려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었다.
옥에서도 일행이 하나님을 찬미하자 큰 지진이 일어나 차꼬가 풀린 동시에 옥문이 열렸고, 이 사건을 계기로 감옥을 지키던 간수와 그 가족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침례를 받았다.
감옥에서 풀려난 바울은, 이후 마게도냐 지역뿐 아니라 철학이 발달한 아덴(그리스 수도 아테네), 고린도(그리스 코린토스) 등 곳곳에서 거침없이 복음을 전파했다. 어려움은 끊이지 않았다.
데살로니가의 반대자들이 베뢰아까지 쫓아와 소동을 일으켰으며 고린도와 아가야에서는 또다시 고소당해 법정에 서야 했다.
천신만고 끝에 여정을 마치고 수리아 안디옥에 돌아왔지만 바울은 얼마 뒤 다시금 길을 떠난다. 에베소를 기점 삼아 제자를 양성하고 지난 여행지를 재차 둘러보았다. 그 과정에서 우상을 만들어 팔던 은장색 무리에게 위협당하고, 다시 수리아 안디옥으로 돌아갈 때는 자신을 죽이려는 음모를 눈치채고 경로를 바꿔야만 했다. 천신만고 끝에 돌아온 예루살렘에서는 유대인들에게 폭행당하고 천부장에 의해 결박되어 끌려가는 수모를 당했다.
그러나 바울은 자유를 잃은 그 시간조차 복음의 기회로 삼았다. 천부장에게 심문받는 자리에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한편 복음을 전하고, 유대 분봉왕 아그립바와 베스도총독 앞에서 변론할 때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증거했다. 황제에게 재판받기 위해 호송되던 중 유라굴로(북동풍) 광풍을 만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도착한 멜리데(지중해 몰타) 섬에서는 독사에게 물리기도 했지만 토인들에게 사랑을 베풀며 은혜를 끼쳤다. 수개월 만에 도착한 로마에서는 자유롭지 못한 형편에도 자신을 찾아오는 이들에게 부지런히 복음을 전하고, 옥에 갇혀서는 여러 지역의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내는 등 그는 상황과 여건을 탓하지 않고 처한 위치에서 힘써 사명을 이루었다.


영원한 천국, 잠깐의 고난을 이겨내는 힘
바울이 여행한 거리는 자그마치 1만 7천 킬로미터에 달한다고 한다. 가끔 이용한 선박 외에 대부분 육로로 걸어서 이동했는데 그 과정은 험난하기 이를 데 없었다.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 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 11장 24~27절)라는 기록만 봐도 바울의 생애가 어떠했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 외에도 바울은 평생 육체의 가시를 안고 살았고(고후 12장 7절), 전도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천막 만드는 일을 병행해야 했다(행 18장 1~3절). 아무리 복음 열정이 뜨거웠다 해도 그또한 사람이기에 때때로 피곤하고 힘겨웠을 것이다.
바울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복음의 길을 달려갈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하나님께서 주실 영원한 하늘 상급이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장 7~8절)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 4장 16~18절)
바울은 영원한 천국과 영광의 면류관이 기다리고 있음을 확신했기에 돌과 태장으로 맞고 동족과 이방인과 강도에게 위협을 당하면서도 오히려 구원받지 못한 이들을 염려하며 그들을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할 수 있었다.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라는 아그립바 왕의 말에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노이다”라고 답한 대목에서는, 위기에 처한 순간에도 모든 이들의 구원을 바랐던 그의 진심이 묻어난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하늘의 축복을 사모하며 가시밭길을 꽃길처럼 달려간 사도 바울. 겉으로 보기에는 항상 쫓기며 고달팠던 연약한 생애였으나 그의 발걸음이 닿은 곳마다 복음은 풍성한 결실을 이루었으며, 2천 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날까지 그의 면류관은 하늘에서 영롱하게 빛나고 있다.
가슴 가득한 천국 소망으로 잠깐의 고통을 아무것도 아닌 듯 이겨낸 그의 고백은, 오늘을 살아가는 엘로히스트들이 마땅히 품어야 할 마음가짐이 아닐까.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8장 17~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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