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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불가한 존재, 무척추동물
 
들어가는 말
무한에 가까운 세계...
위기에 직면한 생명...
작지만 큰 역할을 하...
들어가는 말
있는 듯 없는 듯한 사람 또는 사물을 가리켜 흔히 “존재감이 미미하다”고 한다. ‘사람, 사물, 느낌 따위가 실제로 있다고 생각하는 느낌’을 뜻하는 존재감은 때로 대상에 쏠리는 관심의 정도를 대변한다.

그렇다면 지구상에서 존재감이 가장 큰 동물은 무엇일까. 덩치가 집채만 한 코끼리나 버스 몇 대와 맞먹는 몸집의 고래? 약육강식의 세계니만큼 백수의 왕 사자나 바다를 주름잡는 상어를 꼽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자연에서의 존재감은 꼭 몸의 크기나 힘의 세기에 비례하지만은 않는다. 비록 크기가 작고 미미하며, 인간의 관심 밖에 있더라도 생태계에서 나름의 존재감을 뽐내며 살아가는 동물이 있다. 바로 무척추동물이다. 조그만 멸치도 ‘뼈대 있는’ 생선이건만, 뼈대가 없는 무척추동물은 징그럽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괄시를 받아왔다. 자연에서 그들의 존재감이 결코 작지 않은 이유를 들여다보자.

무한에 가까운 세계
동물은 척추의 유무를 기준으로 척추동물과 무척추동물로 나뉜다. 무척추동물은 말 그대로 등뼈가 없는 동물을 뜻한다. 구불구불한 뱀에게도 있는 등뼈가 없다니 그런 동물이 얼마나 있을까 싶지만, 실제로는 전체 동물 중 무려 97퍼센트를 차지한다.

등뼈 없는 동물을 통틀어 ‘무척추동물’이라 칭한 것은 동물학자 라마르크가 처음이었다. 그는 현대 생물 분류학의 창시자라 불리는 린네의 6개 동물군에서 포유류, 조류, 양서류, 어류를 제외한 곤충류와 연충류를 무척추동물이라 칭했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무척추동물은 전 세계적으로 약 130만 종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오직 등뼈가 없는 것뿐, 생김새는 물론 번식 방법과 생활 방식까지 모두 다르다. 각각 특징에 따라 나뉜 문만 30개가 넘는다. 척삭동물문 단 하나에 척추동물이 속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중 규모가 가장 큰 문은 절지동물문이다. 거미부터 가재, 각종 곤충까지 약 100만 종이 속하는데, 이는 전체 생물 종의 75퍼센트에 달하는 수다. 절지동물은 몸이 딱딱한 껍질로 싸여 있고 다리에 마디가 있다. 다음으로 많은 종을 포함하는 연체동물문은 몸이 연하고 마디가 없으며 아가미로 호흡하는 동물을 일컫는다. 조개와 달팽이, 문어가 잘 알려진 연체동물이다.

지렁이와 거머리는 환형동물문에 속한다.

긴 원통형의 마디가 있는 몸을 가진 동물들로, 알려진 것만 1만 5천여 종이다. 플라나리아로 대표되는 편형동물은 몸이 연하고 납작하며 재생능력이 뛰어나다. 불가사리 같은 극피동물은 가시가 있는 외피로 싸인 방사대칭형의 몸을 가졌다. 강장동물은 몸이 연하고 입과 항문의 구분이 없으며 물에서 산다. 말미잘이 대표적이다.

비록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이밖에도 셀 수 없이 많은 무척추동물이 생태계 곳곳을 활보하고 있다. 절지동물만 해도 분류하기에 따라 무려 8천만 종에 이를 수도 있다니, 그야말로 무한에 가깝다.

무척추동물은 척추동물보다 개체 수와 종류가 월등히 많은 만큼 생태학 연구에 큰 도움이 된다. 특히 해저에 사는 저서생물(底棲生物)은 바닷속 생태계의 건강성을 평가하는 지표가 되며, 초파리나 예쁜꼬마선충 등은 생물학 연구의 표본으로 쓰인다.

위기에 직면한 생명들
비가 오는 날이면 화단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달팽이. 달팽이는 다른 동물에 비해 이동성이 낮아 특정 지역에만 사는 고유종이 많다. 지난 1월 1일, 조금 특별한 달팽이 한 마리가 죽음을 맞았다. 지구상 마지막 ‘하와이안 나무달팽이’였다. 급격한 기후변화와 외래종 늑대달팽이의 침입으로 인해 개체 수가 빠르게 줄다 마침내 완전히 사라지고 만 것이다.

올해 캘리포니아에서 겨울을 난 제왕나비는 약 3만 마리로, 1980년의 1천만 마리에서 99.4퍼센트나 줄었다. 도시 면적이 늘면서 서식지가 줄어든 데다 제초제, 살충제의 사용으로 곳곳이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미시간대학 연구팀은 높아진 대기 중 이산화탄소 수치가 박주가리류 식물의 생장에 악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박주가리류 식물은 제왕나비 애벌레의 유일한 먹이다. 기후변화가 애벌레의 생존율까지 감소시킨 셈이다. 제왕나비의 개체 수는 매년 꾸준히 줄고 있다.

하와이안 나무달팽이와 제왕나비뿐 아니라 최근 많은 무척추동물이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우리나라 민물조개 중 가장 큰 크기를 자랑하는 귀이빨대칭이는 수심이 깊은 강이나 호수에서 유기물을 걸러 먹고 산다. 그러나 댐이나 보 등 인공 구조물의 건설과 잦은 가뭄으로 인한 수위 변화는 귀이빨대칭이에게 큰 위협이 되었다. 거기에 수질 오염, 용존산소 부족 현상까지 더해져 멸종위기에 놓였다.

외래종인 황소개구리의 올챙이를 잡아먹는 물장군은 생태계 교란을 바로잡을 토종 생물로 꼽혔다. 그러나 농촌에서 웅덩이와 방죽 같은 습지들이 사라지고, 남아 있는 곳도 농약으로 오염돼 물장군을 찾아보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사실 무척추동물이 사라지는 일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14년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된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진의 논문에 따르면 무척추동물 개체 수는 지난 35년간 절반 가까이 줄었다. 최근 런던동물원은 보고서를 통해 무척추동물의 20퍼센트가 멸종위기 상태에 놓여 있다고 밝혔다. 삼림과 해양을 가리지 않고 이뤄지는 무분별한 개발과 남획, 환경 오염과 기후변화로 다양한 동식물이 생존을 위협받는 가운데, 환경 변화에 취약한 수많은 무척추동물이 멸종위기의 최전선에 놓인 것이다.

작지만 큰 역할을 하는 무척추동물
하루아침에 모든 조개가 사라지면 어떤 일이 생길까? 문제는 우리가 고소한 봉골레 파스타, 시원한 홍합탕을 먹지 못하게 되는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불가사리, 고둥 등의 무척추동물부터 해달과 새 등 척추동물까지 많은 동물이 조개를 먹고 산다. 조개가 없으면 먼저 이 동물들이 위기를 맞고, 비극은 곧 생태계 전체로 퍼질 것이다. 이처럼 대부분의 무척추동물이 먹이사슬의 바탕에 있으며, 많은 생물이 무척추동물에 의지해 살고 있다.

연약하고 대수롭지 않은 존재 같지만 생태계에서 무척추동물의 역할은 지대하다. 지렁이는 잘 알려진 대로 땅을 파서 기름지게 만들고 식물이 숨을 쉬게 하며, 죽어서도 땅의 양분이 된다. 절지동물에 속하는 갯강구, 모래무지벌레 등의 등각류는 동식물의 사체 등 자연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를 깨끗이 청소한다. 연체동물인 달팽이도 나뭇잎의 조류(藻類)나 곰팡이, 세균을 먹어 나무를 질병으로부터 보호한다.

벌과 나비, 딱정벌레 같은 곤충류 절지동물이 없다면 인류는 당장 먹을거리를 걱정해야 할지 모른다. 이들은 꽃을 옮겨 다니며 꿀을 채취하거나 꽃가루를 먹음으로써 식물의 수분(受粉)을 돕고 열매를 맺게 하는데, 영국왕립학회보에 따르면 전 세계 농작물의 75퍼센트는 수분 매개 동물 없이 키울 수 없기 때문이다.

바닷속을 형형색색으로 물들이는 산호들의 집합, 산호초도 해양생태계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강장동물인 산호는 조류와 공생하며 조류의 광합성으로 영양분을 얻고 그 자신도 다른 생물의 먹이가 된다. 산호초가 없으면 거기에 깃들어 사는 약 3만여 종의 생물이 서식지를 잃는다. 2014년, 유엔 생물다양성협약 사무국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지 않으면 6년 뒤 카리브해의 산호초가 멸종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1986년 유럽에서는 ‘무척추동물 유럽 헌장’을 공표했다. 무척추동물을 가리켜 “종의 숫자와 생물량에서 야생의 동물상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라 칭하며, 동물들의 중요한 먹이원일 뿐만 아니라 농업·임업·축산·인류 건강·물의 순도 보호에 유용하다고 명시했다. 또 혹여 어떤 무척추동물이 인간에게 해를 주더라도 그 수는 다른 무척추동물에 의해 저절로 조절될 수 있다고 분명히 했다. 현재 다양한 연구를 통해 무척추동물의 중요성과 보존 필요성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무척추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시도도 갈수록 활발해지는 추세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 는 속담이 있다. 보잘것없고 능력이 없어 보이는 사람이라도 꼭 재주가 있게 마련이니 함부로 업신여겨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두 속담의 주인공이 모두 무척추동물이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눈에 띄지 않아서, 또는 생김새가 징그럽다는 이유로 오랜 시간 보잘것없는 존재의 대명사로 여겨지던 무척추동물. 그들의 진가를 인간세계의 격언에서 되새긴다.

미국 스탠퍼드대 생물학자 폴 에를리히는, 작은 못들이 커다란 비행기를 지탱하듯 각각의 종이 자연에서 작지만 나름대로 중요한 부분을 담당한다고 보았다. 저명한 과학자 제임스 러브록 또한 실험을 통해 생물 종이 많을수록 생태계의 안정성이 더욱 커진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인간이 그 존재감을 알아차리지 못할 뿐 자연에는 무엇 하나 쓸모없는 존재가 없다. 어느 것으로도 대체하지 못할, 없어선 안 될 소중한 생명들로 이루어진 것이 대자연(大自然)이다.

참고
리처드 리키 외, 『제6의 멸종』, 황현숙 역, 세종서적, 1996.
T.R.뉴, 『무척추동물 보전생물학』, 김원 역, 한국경제신문사, 1999.
이동국 외, 『궁금한 친환경·생명 기술의 세계』, 삼양미디어,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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