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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의 재충전, 수면
 
들어가는 말
동물들의 잠
우리가 잠든 사이에...
왜 잠이 오는가
잘 자는 것도 복, 너...
들어가는 말
현대인은 잠과의 사투 중이다. 시험을 앞두고 일분일초가 아까운 학생들, 넘치는 업무량을 감당해야 하는 직장인들은 각종 에너지음료와 커피로 어떻게든 잠을 줄여보려 한다. 그런가 하면 만성피로를 해소하고자 숙면에 투자하는 사람들도 있다. 질 좋은 잠을 위한 각종 침구와 숙면하는 법을 알려주는 책은 물론, 맑은 산소를 마시며 낮잠을 잘 수 있는 ‘수면 카페’까지 등장했다.

잠을 이기기 위해, 혹은 잠이 들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하는 사람들. 도대체 인간에게 잠은 왜 필요하며, 우리가 잠든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동물들의 잠
약육강식으로 정의되는 야생에서 동물이 가장 무방비상태일 때는 언제일까? 몸을 움직이지 않고, 의식과 반응이 없는 수면 상태다. 그래서 대다수 동물은 잘 때도 경계태세를 늦추지 않는다.

초원의 동물들이 누워서 자는 모습을 보기는 힘들다. 사방이 탁 트인 곳에서 드러누워 자다가는 언제 공격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프리카코끼리 새끼는 부모의 보호를 받으며 옆으로 누워서 자지만, 부모는 선 상태로 2~3시간 정도 잔다고 한다. 말 역시 경계태세가 필요 없는 경주마는 옆으로 누워서 자기도 하지만 야생에서는 위험이 닥치면 언제든 달려 도망칠 수 있도록 서서 잔다.

두루미 등 몇몇 새들은 좌우의 뇌를 교대로 잠들게 해 위험한 상황에 대비한다. 큰돌고래도 양쪽 눈을 차례로 감으며 자는데, 좌뇌와 우뇌가 번갈아 휴식하기 때문이다. 이로써 자는 도중에 물 밖으로 나와 호흡하고, 천적의 공격에도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

반면 하루 대부분을 자면서 보내는 여유로운(?) 동물들도 있다. 나무늘보는 20시간 정도를 잔다. 느린 동작 때문에 오히려 천적의 눈에 잘 띄지 않는 덕분이다. 사람도 평균 수명을 80세로 가정했을 때 약 25년, 즉 평생의 3분의 1을 잠든 채 보낼 만큼 매우 긴 시간을 수면에 투자한다. 여느 동물에 비해 절대적으로 안전한 집이 있기에 편안히 누워서 많은 시간 잠을 청할 수 있는 것이다.

먹이를 찾고 천적을 피하기도 바쁜 시간에 잠을 자는 것은 얼핏 생존 본능에 반하는 행동처럼 보인다. 하루 24시간을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잠자는 시간만큼은 완전히 줄이지 못한다. 쓸모없는 시간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잠이 동물들에게 일정량 꼭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잠든 사이에
중요한 시험을 앞둔 날, 우리는 밤을 새우며 공부하는 것과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는 것 중 고민하게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잠을 자는 것이 공부한 내용을 기억하는 데 훨씬 유리하다. 뇌는 습득한 정보를 잠자는 동안 처리하기 때문이다.

사실 인류가 잠을 과학의 측면에서 접근한 것은 반세기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뇌 과학이 점차 발달하고, 자는 동안 눈꺼풀 밑으로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이는 ‘렘수면(REM sleep)1’이 발견된 이후 수면은 크게 렘수면과 비(非)렘수면으로 나뉘고 있다.

보통 불을 끄고 눈을 감으면 몇 분 사이에 비렘수면 1단계가 시작된다. 수면시간의 75퍼센트를 차지하는 비렘수면은 수면의 깊이에 따라서 1단계부터 4단계까지 나뉘며, 시간이 흐르면서 모든 단계를 고루 거친다. 비렘수면 3~4단계를 깊은 잠, 일명 ‘서파(徐波) 수면’이라고 한다. 서파 수면 때는 눈과 근육의 움직임이 거의 멈춰 뇌의 에너지 소비가 하루중 가장 낮다. 호흡과 심박 수가 느려지고 혈압이 낮아지며, 성장 호르몬 등 각종 호르몬 분비가 활발해진다.

잠들고 60~90분가량 지나면 렘수면이 시작된다. 이때 뇌는 깨어 있을 때처럼 활발히 활동한다. 그 과정에서 꿈을 꾸기도 하는데, 몸을 실제로 움직이게 하는 뇌의 신호는 차단되어 있어서 몸은 가만히 누워 잠을 잔다. 자고 일어났는데 꿈이 생생하게 기억난다면 직전까지 렘수면 상태였다고 볼 수 있다.

렘수면과 비렘수면은 자는 동안 계속 반복된다. 이때 뇌의 신경세포를 연결하는 시냅스가 20퍼센트가량 줄어들면서 불필요한 기억이 정리되기도 한다. 렘수면 시기의 뇌는 새로운 정보와 이미 저장된 정보를 연결하여 사고를 확장하고, 비렘수면 시기에는 ‘수면 방추’ 라는 뇌파가 나타나 최근의 짧은 기억을 장기기억으로 강화한다.

이런 고도의 정보 처리 과정에서 창의력이 높아지고 풀지 못했던 문제를 푸는 힘이 생기기도 한다. 고전파 음악을 대표하는 베토벤과 모차르트, 화학의 기초가 되는 주기율표를 만든 멘델레예프 등 인류 역사에 굵직한 획을 그은 이들은 모두 꿈을 꾸다가 혁신적인 영감을 받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누워서 쉬는 시간이라고 여겨지던 수면이 뇌에는 어느 때보다 생산적인 시간인 셈이다.

왜 잠이 오는가
사람은 자지 않고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1964년 미국의 랜디 가드너라는 고등학생이 264시간을 깨어 있어 기네스북에 올랐다. 실험 중 손과 눈꺼풀이 떨리고 환각을 보며 발음이 부정확해지는 등 이상 반응을 보이던 랜디는 실험 후 15시간을 내리 자고서야 일상으로 돌아왔다. 이후 랜디의 기록에 도전한 사람이 있었으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친다는 이유로 기네스북 측에서 관련 항목을 폐지했다.

이처럼 사람은 밤이 되면 어떻게든 잠이 들고 아침에 깨어난다. 24시간 주기로 몸의 리듬을 조절하는 강력한 ‘생체시계’ 때문이다. 생체시계의 중심은 뇌 시상하부2의 시교차상핵인데, 눈으로 들어온 빛을 감지해 하루의 생체리듬을 생성한다. 아침 햇살이 비취면 하루를 시작하도록 생체시계를 가동하고, 빛이 사라지면 밤으로 인식해 수면을 유도하는 멜라토닌(melatonin)을 분비하는 식이다. 밤에 전자기기를 가까이하면 잠이 쉬 오지 않는 이유도 전자기기에서 나오는 파란빛이 생체시계에 혼돈을 주어서다.

생체시계는 수면뿐 아니라 체온, 신진대사 등 여러 생리현상을 조절한다. 시차가 큰 나라에 가면 처음에는 수면부터 소화까지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적응하게 된다. 생체시계가 새로운 환경에 점차 맞춰지며 생체리듬을 조절하는 덕분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때때로 오후 늦게까지 잠을 자거나 밤을 꼬박 새운다. 이렇게 불규칙한 수면으로 잠이 부족하게 될 경우, 이를 보충하기 위해 ‘수면압력’이 관여한다. 수면압력이 어떤 물질인지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가장 유력한 것은 아데노신(adenosine)3이다. 아데노신이 수용체와 결합하면 수면압력이 축적되는데, 아데노신은 뇌가 활동하는 동안 계속 생기므로 오래 깨어 있을수록 피로해진다. 이로 인해 잠을 아무리 참아도 몸속 피로, 즉 수면압력이 일정량을 초과하면 잠이 쏟아지는 것이다.

그럼 피곤할 때 카페인이 든 음료를 마시면 잠이 깨는 이유는 무엇일까? 카페인은 아데노신과 비슷한 분자구조를 가져, 아데노신 대신 수용체와 결합해 수면압력이 높아지는 것을 방해한다. 그러면 아데노신 농도가 높아도 뇌가 일시적으로 피로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수면압력을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것이 아니기에 이후 더 많은 양의 카페인이 필요해지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

잘 자는 것도 복, 너무 자도 독
밤에 잠들기가 어렵거나, 자도 잔 것 같지 않아 불편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 생체시계 불균형이나 과도한 스트레스로 수면장애를 겪는 것이다. 수면장애는 잠을 이루지 못하는 불면증부터 충분히 자고도 또 쏟아지는 잠을 견디지 못하는 기면증까지 다양하다. 전체 인구의 20퍼센트 이상이 수면장애를 겪고 있다고 하니, 지난밤 푹 자고 개운하게 일어날 수 있는 것도 감사할 일이다.

잠은 다양한 활동으로 지쳐버린 뇌와 신체가 휴식과 회복을 취하고, 다음날 다시 움직이기 위해 에너지를 모으는 요긴한 시간이다. 화나거나 슬픈 기분으로 잠자리에 들었는데 깨어보니 안정감을 느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수면 중 근육의 긴장이 풀어지고 뇌에서 생각을 정리하면서 어지러웠던 정서가 진정되기 때문이다. 반면 잠이 부족하면 감정을 조절하는 전전두엽에 악영향을 끼쳐 쉽게 스트레스를 받고 도덕적 판단력이 흐려진다.

서파 수면 중 분비되는 성장 호르몬은 아이들의 발육뿐 아니라 성인의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하고 세포 재생과 피로 해소에도 도움을 준다. 수면 호르몬이라 불리는 멜라토닌은세포를 손상시키는 활성산소를 해독한다. 또 자는 동안 면역세포의 기능이 활발해지면서 질병을 일으키는 유해물질에 대항할 수 있는 면역력이 높아진다.

그렇다고 무조건 많이 자는 게 좋은 것은 아니다. 깊게 잠들지 못한 채로 9시간 이상 자면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역효과를 맞는다. 2009년 핀란드 국립보건복지연구소의 연구 결과, 6시간 미만이나 9시간 이상 자는 사람이 7~8시간을 자는 사람보다 인지력 테스트에서 현저하게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 이처럼 잠은 기억력, 문제 해결 능력, 창의력은 물론 인체 활동의 거의 모든 영역에 구석구석 관여한다.

간혹 깊이 잠든 사람을 가리켜 ‘죽은 듯이 잔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잠이 죽음과 다른 이유가 있다면 언젠가 깨어나기 때문이다. 전자기기에 충전하는 시간이 있듯, 동물에게는 잠자는 시간이 있다. 수면 과학은 아직 신비에 싸인 미지의 세계이지만, 자는 동안 몸속에서 무언가 대단한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지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해 새로운 하루를 준비하게 하는 잠. 오늘도 우리는 그 고요하고도 놀라운 과정에서 깨어나 새날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잠 3장 21~24절 “내 아들아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지키고 이것들로 네 눈앞에서 떠나지 않게 하라 그리하면 그것이 네 영혼의 생명이 되며 … 네가 누울 때에 두려워하지 아니하겠고 네가 누운즉네 잠이 달리로다”

1. 렘수면: 수면의 단계 중 하나로, 자는 동안 급속 안구 운동(Rapid Eye Movement)이 일어나는 기간.
2. 시상하부: 간뇌의 일부. 물질대사·수면·생식·체온조절 등에 관여하는 자율 신경 작용의 중심 역할을 한다.
3. 아데노신: 뇌세포가 활동하면서 사용한 에너지원(아데노신3인산. ATP)의 잔여 물질.

[참고]
매슈 워커,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 이한음 역, 열린책들, 2019.
아리아나 허핑턴, 『수면 혁명』, 정준희 역, 민음사, 2016.
사쿠라이 다케시, 『수면의 과학』, 장재순 역, 을유문화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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