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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라파 유대인과 히브리파 유대인
헬라어를 사용하는 유대인과 히브리 방언(초대교회 당시에는 아람어)을 사용하는 유대인이라는 뜻.

1. 아람어와 유대인
주전 6세기경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으므로 인해 바벨론에 사로잡혔던 유대인들은 70년 동안 바벨론 지역에 살면서 조상의 고유 언어인 히브리어를 사용하기보다는 당시 중동 지방의 공용어였던 아람 방언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이후에도 일상생활에서는 계속 아람 방언을 사용하게 되었으며 예수님 당시에도 아람 방언이 통용어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인 요한의 아들 시몬에게 지어주셨던 "게바"(바위라는 뜻)라는 이름도 아람어였습니다. 후에 그 이름의 뜻을 헬라어로 번역하여 "베드로"(페트로스 : 바위)로 부르게 된 것입니다(요 1:42 참조).

예수님께서 거라사인의 지방에서 회당장의 딸을 살려주실 때 그 아이의 손을 잡고 "달리다굼"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도 아람어로서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수 근처에서 귀먹고 어눌한 자를 고쳐주실 때 하늘을 우러러 "에바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도 아람어로써 "열리라"는 뜻입니다(막 7:33∼37).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을 때 마리아가 말하기를 "랍오니"라고 호칭했는데 아람어로써 "선생님"이라는 뜻입니다.

기타 지명 중에서도 겟세마네(기름 짜는 틀), 골고다(해골) 등 많은 지명(地名)이 아람어로 통용되었습니다.

2. 헬라어와 유대인
바벨론에 사로잡혔던 유대인 중에는 자신들이 살던 이방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정착한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로 아람어를 사용하다가 후에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 원정으로 말미암은 헬라어 보급의 영향을 받아 이방 지역에 사는 유대인 대부분이 헬라어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방 지역에서 살던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지키기 위한 공동체를 형성하고 특정한 모임 장소에서 율법과 전승을 공부하였는데 그 후 더 발달하여 "회당" 제도가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방 지역에서 헬라어를 사용하던 유대인들 일부가 조상의 땅인 가나안에 돌아왔을 때는 아람어를 사용하는 대다수 유대인과 비교하면 소수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3. 초대교회 때의 히브리파와 헬라파
초대교회 당시에 진리 안에 들어온 대부분의 성도는 아람어를 사용하는 성도들이었고(히브리파), 이에 비해 헬라어를 사용하는 소수의 성도들(헬라파)이 있었습니다.

당시 교회에서는 생활이 어려운 과부들을 도와주는 전례가 있었습니다. 헬라파의 과부들이 구제에서 제외되는 사례가 발생해 헬라어를 사용하는 성도들이 이의를 제기하기에 이르렀는데, 이는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열중하다 보니 교회의 재정 및 구제 등에 대해 꼼꼼히 챙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사도들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성도들로부터 칭찬 듣는 일곱 명을 택하여 교회의 재정 및 제반 살림을 맡기고 더욱 전도하는 일에 전념하게 되었습니다(행 6:1∼7).

4. 초대교회의 전도와 회당
어느 지역이건 유대인들이 사는 곳에서는 이 회당에서 종교적인 집회를 했기 때문에 초대교회의 역사에 있어서 이 회당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전도 장소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주 회당에서 가르치셨는데 가버나움 회당에서의 설교 내용은 우리가 아주 잘 아는 내용입니다(요 6:26∼71, 눅 4:16, 눅 4:31절 참조).

사도들이 이방 지역에서 복음을 전할 때도 유대인들의 집회 장소인 회당을 찾아가 그리스도를 증거하곤 하였습니다(행 14:1, 행 17:10, 행 19:8 참조).

5. 아람 족속과 이스라엘
아람은 노아의 세 아들 중 하나인 셈의 아들로서 아람 족속의 시조입니다. 아람의 후손들인 아람 족속은 요단강 동북부로부터 메소포타미아(원래는 "강과 강 사이"라는 말로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의 분지를 일컫는 말) 지역에 이르기까지 널리 퍼져 살았는데, 그들의 중심 도시는 다메섹(다마스커스)이었습니다.

다윗 시대와 솔로몬 시대에 와서는 이스라엘에 조공을 바치면서 나라를 유지해 오다가 이스라엘이 남, 북으로 분열된 이후 북이스라엘 지역에 큰 위협을 가하는 세력으로 부상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북이스라엘의 아합왕 당시에는 아람과 큰 전쟁을 치르기도 했는데, 엘리사에게 와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문둥병을 치료받고 돌아간 나아만 장군도 아람의 군대장관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아합왕은 아람에게 빼앗겼던 길르앗 라못을 정복하려고 전쟁을 벌이다 아람 병사의 화살을 맞고 죽었습니다.

그 후 앗수르 제국이 강성해짐에 따라 아람의 도시들은 대부분 앗수르에게 점령을 당했고, 앗수르인들은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나서 이스라엘인들을 아람 족속이 살던 땅으로 이주시켰고, 그 땅에는 아람인들을 이주시켜 살게 했습니다.

앗수르에게 많은 지역을 빼앗긴 아람 족속들은 신바벨로니아 도와 앗수르를 대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람 족속은 차차 바벨론에게 동화되어 역사 속에서 그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6. 중동 지방의 공용어가 된 아람어
아람어는 히브리어와 같은 셈족어인데, 앗수르 시대나 바벨론 시대를 거쳐 메대·바사 제국 시대까지 국제 공용어가 되었습니다. 다니엘이 주전 606년경 바벨론에 사로잡혀 잡혀갔을 때도 바벨론은 아람어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단 2:4 "갈대아 술사들이 아람 방언으로 왕에게 말하되"

※ 이 부분(단 2:4절)부터 단 7장 끝까지는 아람어로 기록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이 이룬 동방 원정 이후에 보급된 헬라어에 밀려나 헬라어에게 국제 통용어의 지위를 내주게 되었습니다.

바벨론 시대와 메데·바사 시대 때 포로 생활을 하며 아람어를 사용하던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귀환 이후에도 계속 아람어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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