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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도들의 사상(思想)을 배우고자 하는 이유는 그들의 사상이 예수님의 교훈을 통해 정립되었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의 사상 속에는 우리 육체가 영혼의 집이라고 각인되어 있습니다.
고후 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육체가 죽으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우리의 영혼은 현재 임시로 사용하는 장막 집(육체) 속에 살지만 구원을 얻어 천국에 가면 임시용이 아닌,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영원한 집 속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고후 5:6 "이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에 거할 때에는 주와 따로 거하는 줄을 아노니… 우리가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사도 바울의 이 편지 내용은, 주(예수님)는 영의 세계에 거하시고 우리는 육의 세계에 거하고 있으니 육을 입고 있는 동안에는 주와 따로 거하는 것이며 바울과 성도들의 원하는 바는 빨리 육신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 속에서 육신에 거하는 것은 누구이고 육신을 떠나는 존재는 누구이겠습니까? 몸을 떠나고 싶다고 한 존재는 바울 자신, 즉 바울의 영혼이었습니다. 이는 그가 입고 있던 육체가 생명의 본질이 아니라 육체 속에 있는 그 영이 바울 본인이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사도 바울은 임시 거처하는 천막집(육신) 생애를 위한 삶만을 원한 것이 아니라, 그 영이 천막집을 벗어나 하나님께서 주실 영원한 집에 거할 때의 생애를 위해 준비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빌 1:21∼24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앞서 인용한 고후 5:6절의 "우리가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라는 말씀과 빌 1장에 기록된 "내가 …떠나서"라는 말씀은 같은 내용입니다. 떠난다는 것은, 이어지는 내용 "육신에 거하는 것이"라는 부분이 설명하듯이 육신에서 떠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 육신에 거하기도 하고 육신에서 떠나기도 하는 존재는 누구입니까? 바울 자신, 즉 바울의 영혼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이 육체를 떠나는 것보다 육신에 거하는 것이 성도들에게는 더 유익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바울이 육신을 떠나면(죽으면) 그리스도에게로 가기 때문에 자신에게는 좋은 일이겠지만 성도들에게는 바울이 육신으로 함께 거하면서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쳐 주고 바른길로 인도해 주는 것이 더 유익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계시의 내용을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고후 12:1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사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바울은 자신이 계시를 볼 당시, "자신이(그의 영이)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알고 계신다."라고 두 번이나 반복하여 기록하였습니다. 이 말씀 가운데 나타난 내용을 볼 때 바울은 육체와 구분된 영혼이 따로 있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아니면 영혼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그가 만약에 영혼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면 "몸 안에 있었는지 몸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라는 표현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는 바울 자신이 계시를 볼 때(그는 자신이 계시를 본 사실을 3인칭인 "한 사람", "그"라고호칭하고 있다) 자신의 영이 몸을 빠져나와 낙원에 갔었는지, 아니면 몸과 함께 갔었는지 자신은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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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간의 삶 속에서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하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어떤 이들은 말하기를 "인간은 살기 위해서 먹는다." 또는 "인간은 먹기 위해서 산다."라고 말합니다. 물론 둘 다 맞는 말이 아닙니다.
나의 주인은 이 육체가 아니라 육체 속에 갇혀 있는 영혼입니다. 내(엄격히 말해 내 영혼)가 "육체"라고 하는 천막집(Tent) 속에 살고 있다는 말은 우리에게 뭔가를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캠핑을 가거나 야영할 때 천막(텐트)에서 며칠간 지내지 않습니까? 다시 말해서 천막에서의 삶은 임시 지내는 생활입니다. 마찬가지로 천막으로 비유된 육체 속에서의 삶은 잠시 거처하는 집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겉 사람인 육체를 위해서 산다면, 그는 집을 위해서 사는 사람일 것입니다. 삶은, 집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서도 자칫 육신의 삶에 더 치우칠 때가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육신을 입고 있는 이상, 육신의 삶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잠시 있다가 없어질 천막집만을 위해 산다면 얼마나 허무하고 미련한 행위이겠습니까?
비록 지금은 죄로 말미암아 천막집 속에 살지만 그리스도의 유월절 공로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게 되면 하나님께서 준비해 두신 영원한 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삶의 비중을 어디에 두고 살아가야 할지 답은 명확하리라 생각됩니다.
고후 4:18 "우리의 돌아보는(소망하고 바라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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